[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2장 / 포르투갈의 바탈랴 수도원(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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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2장 / 포르투갈의 바탈랴 수도원(27)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8.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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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울산 가지산 등 영남알프스 일대에서는 왜군과 의병 등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장편소설 <군주의 배신>의 주 배경이 되고 있는 간월재 전경. 백승휘 소설가 제공

1년 전인 1593년 10월(음력) 영의정이 된 류성룡은 조정으로부터 멀어진 민심을 잡기 위해서 전시 개혁입법을 발표하였는데 면천법과 작미법, 속오군의 편성 등이 그것이었다.속오군은 기존의 군편제와는 달리 양반 외에도 천민 즉, 종들과 백정의 신분을 가진 자들도 관군에 들어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천민들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서 취해진 조치가 면천법이다. 천민의 신분을 가진 백성도 왜군 수급 한 개를 바치면 면천을 시켜주고 세 개를 바치면 관직을 준다는 것이 면천법의 핵심이다. 면천법과 속오군 덕분에 많은 천민들이 관군에 지원하여 속오군의 수효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와 함께 실시한 작미법은 기존에 호(가구) 단위로 부과하던 세금을 토지의 면적에 따라서 부과함에 따라서 양반들의 부담은 대폭 커지고, 양민들의 부담은 파격적으로 줄어들었다.

이 전시개혁법의 전격적인 실시로 양반 사대부들은 류성룡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 법안의 발표는 흩어졌던 민심이 다시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의병과 속오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백성들이 늘어나면서 조선은 왜군과의 전투에서 더 이상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게 되었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을 만들어 주었다.

늦가을 바람이 찢어진 의복들 사이로 아프게 부딪혀 왔다. 홍의장군도 양반인데 감히 그 앞에서 가슴속에 있는 말을 끄집어내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는 누구를 만나든지 흉중의 말을 할 때는 정말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할 것이다.

천동은 서둘러 근처에 쉴 만한 장소를 찾아보았다. 도토리가 무성하게 달려있는 덮가나무(상수리나무) 아래에 잠시 몸을 뉘었다. 도토리를 흔들어서 주워 모으면 하루 치의 식량은 해결될 것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이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답다. 지리산 깊숙이 들어가서 세상을 등지고 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검불잠이 들었다.

어지러운 꿈속에서 헤매고 있던 천동은 누군가 자신을 툭툭 치는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어났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룡산에서 만났던 삿갓을 쓴 사내인 세평 바로 그 사람이었다. 천동은 놀라서 후다닥 일어났다. 세평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뭐하는 것이냐?”

“비렁뱅이가 갈 곳을 정해 놓고 가는 것 봤습니까?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것이지요. 아무 곳이나 누우면 거기가 내 집이니까요.”

“제법 말이 늘었구나. 나를 따라오거라. 갈 곳이 있다.”

천동은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앞장서서 가고 있는 세평 또한 말 한 마디 없이 부지런히 걷기만 하였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걷던 천동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정말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제는 말해줄 때도 되지 않았나요?”

“그놈 참 말 많네. 따라오라고 하면 그냥 따라올 일이지 뭔 사내놈이 그렇게 말이 많아?”

“저기, 그게 아니라 목적지는 가르쳐 주고 가자고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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