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설계수명을 넘긴 고리 2호기에 대한 계속 운전 승인이 잠정 유보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5일 고리 2호기 계속 운전 심의를 진행했으나, 검토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다음 회의에서 다시 심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23년 운전을 멈췄던 고리 2호기의 연장 운영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고리 2호기 운전 연장 여부는 탈원전 성향이 강한 이재명 정부의 원전 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였다.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이 계속 운전을 신청한 원전은 고리 2~4호기를 포함해 총 10기에 이른다. 이들 원전은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에 따라 폐쇄가 예정되었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친원전’ 기조로 전환되며 연장 운전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이들 원전은 다시 존속과 폐쇄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현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 건설은 15년 이상 걸리고 지을 부지도 없다”고 언급하며, 사실상 ‘탈원전 시즌2’를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안에서는 원전 건설 및 전력 정책을 신설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하면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 기조를 강화할 태세다.
안타깝게도 글로벌 추세는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원전 수명 연장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원전의 91%가 설계 수명을 넘긴 후에도 계속 운전 중이다. 미국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 수명을 기존 60~80년에서 최대 10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계속 운전 중인 원전이 단 한 기도 없다.
문제는 앞으로 국내 대형 원전에 대한 계속 운전 여부를 연이어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원전이 30~40년의 비교적 짧은 수명을 갖고 있어, 해외 주요국들과 비교하면 원전 활용 면에서 격차가 크다. 수조원을 들여 건설한 원전을 단지 수명이 다했다는 이유만으로 폐쇄하는 것은 경제적이지 않다.
안전성과 기술적 보완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원전 수명 연장은 경제·사회적으로 필요한 선택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달라지며 원전이 정치적 논쟁의 중심이 된다면, 원전 산업은 물론, 이를 기반으로 한 첨단 산업 전반의 경쟁력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지속 가능하고 과학적인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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