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추석 연휴였다.
덕분에 여유롭게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친구들과 자리는 언제나 편안하고 즐겁다.
약속 시간이 임박하자 하나둘 모여들었다.
예닐곱 명이 두 자리를 붙여 앉으니 좁은 식당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밑반찬이 차려지기 무섭게 술잔이 돌았다. 본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벌써 술은 두 순배 돌았다.
각자의 취향대로 마셨다. 예전과 다른 점이었다. 한창 젊었을 땐 누구도 예외 없이 소주에 맥주를 탄 소위 ‘소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건너뛰기도 없었다. 주량과 관계없이 초반은 브레이크 없는 전속력 질주였다.
그러나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술의 양도 줄었고, 속도도 느렸다. 물론, 필자처럼 술 대신 음료수로 박자를 맞추는 사람도 있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최고의 안주는 무엇일까? 소고기나 생선회?. 아니다. 추억이다.
소가 되새김질하듯, 추억은 언제 어디서 되새김질해도 맛있다. 질리지 않는 음식이 있다면, 추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 정년퇴직했고, 대부분 인생 2막의 삶을 살고 있다.
삶의 목적과 방향, 수단은 제각각이다. 어떤 친구는 30년 넘게 직장에서 일했으면 퇴직 이후의 인생은 하고 싶은 삶을 살아야 한다면서 생면부지의 낯선 시골로 들어갔다. 남들은 전원생활이라지만, 본인은 자연인의 삶이라고 주장한다.
시골에 정착하기까지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도시에 나오는 것이 불편하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돈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아등바등 살아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리니 한없이 평안하단다.
반면, 다른 친구는 도시의 삶이 편리하고 안전하다며 대도시를 고수하고 있다. 나이 들수록 병원 가까운 곳이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울산만 해도 고만고만한 병원은 많지만, 결국 중요한 진단과 처방, 수술이 필요할 땐 대도시에 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울산이 서울보다는 작은 도시지만 그래도 광역시인데 의료 인프라는 만족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술이 몇 순배 더 도는 사이 실컷 되새김질한 추억은 뒷전으로 밀리고, 각자가 안고 있는 고민과 걱정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양친을 다 여의어서 고아가 되었다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고, 부모님의 건강이 걱정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본인들 건강이 더 걱정이라는 것이 주류였다.
직장 다닐 때처럼 고정적인 수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아프면 안 되기에 무엇보다 첫째로 건강을 잘 보살피자는 도원결의(桃園結義) 아닌 결의도 했다. 자식 걱정도 빼놓을 수 없었다. 취업, 결혼, 보육 등 당사자들이 느끼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부모 입장에서도 만만치 않은 걱정거리다.
정치 영역은 죽마고우(竹馬故友)라도 어쩔 수 없이 격렬하게 부딪혔다. 정치적 성향과 색깔이 각양각색이다 보니 가급적 자제를 하지만, 선거가 임박한 시기가 오면 자연스럽게 뒷담화의 소재가 된다.
경기침체와 인구 감소, 지역 소멸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울산의 앞날이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에 대한 걱정은 정치적 당파성과 별개로 한마음이었다. 그나마, 울산은 위기의 시대를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고 있다는 데 전반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했다.
정당을 떠나 지역과 주민의 대표가 되겠다는 사람의 조건에 대해서도 격론이 벌어졌다. 한 친구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중앙에서 활동하고 인맥이 있는 사람이 적임자라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지역의 일은 지역 주민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취지에 걸맞게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날, 친구들의 술자리에선 중앙 일꾼론은 소수였고, 지역 일꾼론이 다수였다. 시골에서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의 지역 일꾼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지역에서 일꾼이 되려는 사람은 고향을 팔아 자리를 탐할 것이 아니라 지역에 정착하면서 주민들과 같이 쓰레기도 주워보고, 술도 마셔보고, 고민도 나눠본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술자리 다음날 자연인 친구는 ‘고향 사랑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모순적인 언행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해 언행일치를 증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라는 문자를 모두에게 날렸다. 긴 추석 연휴만큼 생각의 여지가 가득한 말이었다.
김종대 울산시 대외협력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