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19일 오전 10시50분, 경북 청도군 경부선 구간에서 또 한 번의 비극이 일어났다. 동대구를 출발해 진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점검작업을 하던 인부들을 덮친 것이다. 작업자 7명 중 2명이 목숨을 잃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지점은 곡선 구간으로, 나무와 구조물이 시야를 가려 approaching 열차를 제때 확인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산업안전보건규칙 제407조(열차운행감시인 배치)와 제408조(열차통행 중 작업 제한)에서 정한 기본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고는 결코 불운의 결과가 아니다. 이미 예측된 위험을 외면한 반복된 참사일 뿐이다. 최근 몇 년간 철도 작업 중 발생한 충돌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22년 서울 구로역 부근에서는 선로 보수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무궁화호에 치여 2명이 사망했다. 2024년 대전 호남선 구간에서도 외주업체 근로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이들 모두 열차 접근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대피할 공간이 부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청도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감시인이 없었거나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열차 간격을 확보하지 않은 채 작업이 강행됐으며, 대피 공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곡선 구간의 시야 제한까지 겹치면서 대피가 지연됐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코레일과 외주업체 간 안전관리 체계가 허술했고, 현장 관리자의 감독이 소홀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철도 작업 매뉴얼이 규정한 ‘전차선로와 1m 이상 이격’ ‘열차 접근 시 즉시 대피’와 같은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해외 사례는 분명히 다르다. 미국은 ‘트랙 아웃 오브 서비스(Track Out of Service)’라는 제도를 통해 작업 구간을 일정 시간 동안 아예 폐쇄한다. 열차와 작업자가 같은 공간에 머무르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일본은 곡선 구간에 자동 경보 시스템을 설치하여 1㎞ 전방에서 열차가 접근하면 경광등과 사이렌이 울리고, 작업자가 착용한 휴대용 진동 경보기도 동시에 작동한다. 기술과 제도를 결합해 인간의 인지 한계를 보완한다.
독일은 작업 전 반드시 운행지휘자와 협의를 거쳐 작업 구간을 설정하고, 공사보호설비를 설치해 해당 구간에 접근하는 열차의 전방 신호를 자동으로 정지로 바꾼다. 현장에는 이동식 신호기와 경적 알람이 함께 작동해 작업자에게 위험을 알린다.
영국은 ‘세이프 시스템 오브 워크(Safe System of Work)’ 제도를 운영해 모든 선로 작업에 대해 위험평가와 작업허가서를 의무화하고, 단순히 감시인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동경보장치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히 곡선 구간이나 시야 확보가 어려운 곳에서는 ‘선로 점유’ 방식을 적용해 원칙적으로 열차 운행을 중단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한다.
우리나라 역시 더 이상 ‘감시인 배치’라는 최소한의 조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열차 운행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작업을 할 때는 몇 가지 필수 안전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작업 시작 전 열차 운행 시간표를 반영한 ‘작업-운행 조정계획’을 수립하여, 열차와 작업이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작업구간 양측에 전담 감시인과 자동 경보장치를 동시에 배치하여, 인간의 부주의와 기계적 결함을 상호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작업자 대피 공간을 확보하거나, 확보가 불가능한 구간은 원칙적으로 운행을 중지해야 한다. 넷째, 작업자 개인별 휴대형 경보장치(진동·음향·빛)를 지급하여 시각·청각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위험성 평가와 사전 교육을 강화하여 모든 근로자가 열차 접근 시 대피 행동을 자동화된 습관으로 체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고는 단순한 불운이 아니다. 수차례 반복된 경고를 무시한 결과이며, 안전 규정과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은 관리 부실의 산물이다. 철도 현장의 안전 원칙은 단순하다. 열차와 작업자는 같은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된다. 이 기본 진리를 제도와 현장에서 철저히 구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같은 비극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생명의 언어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정안태 울산안전(주) 대표이사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