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교폭력 심의, 교육청의 ‘노력’이 아닌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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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학교폭력 심의, 교육청의 ‘노력’이 아닌 ‘책임’이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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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10건 중 6건이 법정 기한인 한 달 내 심의되지 못한 사실이 국정감사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울산 피해 학생들의 절박한 호소가 행정의 책상 위에서 무기력하게 방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울산 교육 행정의 학교폭력 대응 시스템의 핵심인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교육부 국감자료에 따르면 울산의 학폭위 심의 지연율은 2022학년도 61.2%, 2023학년도 68.9%, 2024학년도 62.8%로, 전국 평균(42.7%)보다 훨씬 높다. 17개 시도 중 다섯 번째로 심각한 수준이다. 교육부 가이드라인상 심의는 접수 후 21일 이내, 부득이한 경우 7일 연장까지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절반 이상이 기한을 넘겼다는 것은 단순 행정 착오로 설명하기 어렵다. ‘지연은 곧 방치’라는 지적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학교폭력 사건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조사와 심의가 길어질수록 피해 학생의 불안과 고통은 커지고, 학급 내 갈등도 장기화한다. 심의 지연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 징계에도 혼선을 초래한다. 가해·피해자 모두가 불확실한 상태에 오래 놓이면 학교 현장은 더 깊은 분열로 빠질 수밖에 없다. 학폭 사안은 단순한 분쟁이 아니라 학생의 인권과 교육의 신뢰가 걸린 문제다.

울산교육청은 올해 들어 업무 조정과 인력 보강으로 지연이 대부분 해소됐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올해 3~8월 사이 지연율은 1%선에 그쳤다. 이는 다행스러운 변화다. 그러나 이는 출발선일 뿐이다. 법정기한을 지키는 것은 개선이 아니라 기본이다. 뒤늦은 정상화를 ‘성과’로 내세울 일은 아니다.

울산의 학폭위 심의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감당하는 행정 인력과 지원 체계는 여전히 미비하다. 조사 보고서 검토, 피해자 안내, 일정 조율 등 복잡한 절차를 처리하기에는 현장 인력이 과중한 업무 부담을 떠안고 있는 현실적 한계도 분명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 대응의 최일선은 교육청이다. 행정의 속도가 늦으면 피해자 보호 체계는 무너지고, 교육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학교폭력 심의는 ‘얼마나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성실히 책임을 다하느냐’의 문제다. 울산교육청은 “뼈를 깎는 노력”이라는 말로 책임을 덮기보다, 왜 기한을 지키지 못했는지 그 원인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도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피해 학생의 하루는 행정의 하루보다 훨씬 길다. 학교폭력 심의는 단 하루라도 늦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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