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울산 산업,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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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울산 산업,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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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협 서호홀딩스 대표

울산은 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과 수많은 협력업체가 얽혀 산업 생태계를 이뤄온 산업화의 중심지다. 하지만 성장의 이면에는 ‘약육강식’의 오래된 산업 질서가 자리 잡고 있다. 대기업은 자본과 기술을 모두 갖췄지만, 협력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력난, 단가 압박 속에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다.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대기업은 실적 방어를 위해 비용 절감에 몰두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협력사로 전가된다. 강자가 살아남기 위해 약자가 희생되는 구조가 울산 산업의 뼈아픈 단면이다.

단가 인하 요구와 납기 단축, 불공정 계약은 이제 익숙한 관행이 되었다. 협력업체는 적자를 감수하며 납품을 이어가고, 숙련 인력은 더 나은 처우를 찾아 대기업으로 떠난다. 결국 중소기업이 무너지면 대기업도 공급망 불안의 부메랑을 맞게 된다. 약육강식 논리는 단기적으로 효율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 전체를 병들게 하는 자멸의 길이다.

그러나 원인은 대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협력사들 간의 과도한 출혈경쟁 또한 심각하다. 서로 더 낮은 단가에 수주하려 무리하게 경쟁한 결과 품질은 떨어지고 인력 유출은 심화된다. 결국 ‘공멸의 싸움’이 반복된다. 협력사들도 이제 가격 경쟁 대신 기술 협력과 품질 경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서로의 경험과 강점을 나누는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못하면 대기업 납품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 산업 현장의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급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쳐 울산의 주력 산업이 모두 거센 파도를 맞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위기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울산의 산업 생태계는 대기업과 수많은 협력업체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 한쪽이 흔들리면 다른 쪽도 금세 위기에 빠진다.

이제는 경쟁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서로를 이겨야 하는 제로섬 경쟁을 버리고, 서로를 살리는 상생 경쟁으로 바꿔야 한다. “협력사의 경쟁력이 곧 완성차의 경쟁력이다.” 현대자동차가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이 말은 울산 산업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선·석유화학·자동차 산업의 협력업체가 튼튼해야 울산 산업이 버틴다. 대기업이 협력사를 단순한 하청이 아닌 파트너로 대해야 위기 속에서도 혁신이 나온다.

석유화학단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졌다고 협력사 단가를 낮추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함께 기술 개선과 효율 향상을 모색해야 한다. 대기업의 노하우와 협력사의 기술이 결합하면 불황도 기회가 된다. 지방정부와 산업단지도 산학연 협력 플랫폼을 통해 중소기업의 기술력과 인력 확보를 지원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과 협력사, 지자체가 함께 ESG, 탄소중립, 인재 양성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그 성과는 울산 전체의 경쟁력으로 돌아올 것이다.

상생의 시작은 대화와 신뢰다. 대기업과 협력사는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어려움을 솔직히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다. 울산은 현장 중심의 도시다. 책상 위 정책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기업은 협력사의 적정 이윤을 인정하고 제때 대금을 지급해야 하며, 협력사는 품질과 납기를 철저히 지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이 지켜질 때 울산 산업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제 기업의 경쟁력은 규모가 아니라 신뢰와 지속가능성에서 나온다. 대기업이 ESG 경영을 말한다면, 그 실천은 협력사와의 상생 속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환경, 안전, 에너지 절감 기술을 공유하고 지역사회 공헌에도 함께 나설 때 울산은 세계가 주목하는 산업도시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지금 울산 산업에 꼭 필요한 말이다. 함께 멀리 가는 지속가능한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협력사의 생존이 곧 대기업의 경쟁력이고, 대기업의 신뢰가 곧 지역 산업의 미래다. 울산이 다시 도약하려면 모두가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것이 울산을 사랑하는 기업인으로서, 그리고 산업 현장을 지켜온 선배로서 드리는 진심 어린 제언이다.

이정협 서호홀딩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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