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의 20대 시절 애틋한 연서와 남편의 습작 50년만에 한권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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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20대 시절 애틋한 연서와 남편의 습작 50년만에 한권 책으로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05.18 0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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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보낸 편지를 들고 있는 천이화씨.
▲ 1969년 결혼식 장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이 지나갔다. 이제는 ‘부부의날’(21일)이 다가온다. 둘(2)이 만나 하나(1)가 된 부부의 의미를 돌아보는 날이다.

올해 부부의 날이 그 어느 해보다 특별한 사람이 있다. 15년전 남편을 떠나보낸 천이화(75)씨다. 천씨는 문학인의 감성과 문장력으로 생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남편의 편지와 습작집을 반세기 만에 정리했다. 두 사람의 인연을 돌아보는 소중한 단행본이 이제 곧 출간된다.

천씨의 서랍장 속에는 부부가 연애를 하던 시절 시작된 연서가 수백여 통 들어있다. 가장 오래된 편지는 1968년도에 쓴 것으로, 봉투와 종이가 모두 닳아 가장자리가 습자지처럼 얇아진 지 오래다. 전남 광양에 살던 남편 고 김병석씨는 울산시 동구 전하동에 살던 천씨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글은 언제나 단발머리 소녀를 그리워했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촌 반대편에 있어도 매일 한 집에 사는 듯한 요즘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시절이었다. 남편은 광양과 울산의 중간 즈음에서 짧은 시간 얼굴이라도 보자고 편지를 부쳤지만, 천씨가 편지를 받을 때 즈음은 약속 날짜가 며칠씩 지나있기 일쑤였다. 아쉬움은 더 커졌고, 사무치는 그리움은 이십대의 청춘남녀 모두를 열병으로 몰아갔다.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 언어는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시(詩)가 됐다.

‘고개를 젖히고 지그시 눈감으면/여기 우리 둘만의 바다가 열리는… 대화를 삼킨 채 우주가 쉬는동안/거기 또 우리 둘만의 세계가 있다’

­고 김병석 ‘입맞춤’ 중에서

천씨는 편지봉투 뭉치를 볼 때마다 울컥 울음이 터졌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오랫동안 어쩌지 못하고 그냥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다가 마음을 먹고 정리를 시작했다. 본인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남편의 유작 중 몇 편은 지역 시인과 시낭송가의 도움으로 문학지에 보냈다. 이후 <문학예술>(2021 봄·여름호)에 고 김병석씨의 작품이 신인상 수상작으로 실렸다. 당선 소감은 남편을 대신 해 천씨가 썼다. “생전 문학인이 되기를 바랐던 남편의 유지를 받들고자 투고한 일이 찬란한 빛이 되어 선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의 유고시에 아름다운 시문학의 날개를 달아 준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남편의 환한 미소가 함께 할 것 같습니다.”

고인의 작품에 대해 ‘일상을 관조한 남다른 시의 표출’이라고 한 심사위원들은 “제75회에 이르는 본지(문학예술) 신인문학상 제정 이래 최초로 작고한 이의 유작을 당선작으로 뽑았다”고 심사평을 남겼다.

13년 전 천씨는 남편을 보낸 뒤 괴로워하다 성악하는 딸의 권유로 합창단에 들어간 적이 있다. TV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한 ‘울산한사랑실버합창단’이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천씨는 지금도 합창으로 생활의 활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주변으로 삶의 희망을 퍼뜨리는 행복 배달부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고있다.

“한때는 노래를 부르며 그 시간을 버텼어요. 앞으로는 남편의 시를 읽으며 활력을 찾으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해요. 당선 소감처럼 ‘남편의 환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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