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13)높으락 낮으락 하며-안민영(1816∼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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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13)높으락 낮으락 하며-안민영(1816∼미상)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4.04.12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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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락 낮으락 하며 멀기와 가깝기와
모지락 동그락 하며 길기와 짜르기와
평생을 이리하였으니 무슨 근심 있으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삶

사월을 건너오는 바람은 변덕스런 처녀처럼 출렁거린다. 봄이라고 먼저 꺼내 입은 얇은 치마 아래로 냉기가 서늘하다. 보리누름에 중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옛말을 실감한다. 밤새 찬바람의 끝자락에 실려 온 꽃샘에 다시 옷깃을 여미는 아침이다.

어린 시절엔 양반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조선 시대엔 양인 첩의 자식인 서자(庶子)와 천인 첩의 자식인 얼자(孼子)는 양반의 자식이면서 적통이 아니었기에 가족과 사회에서 차별 대우를 받았다. 문과 응시가 금지되었고 서얼은 중인(中人)의 처우를 받았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 관가에 등용되기도 했지만 아버지 관직의 높낮이나 어머니 신분에 따라 한계가 있었다.

안민영은 서얼 출신으로 조선 고종 때 뛰어난 가객(歌客)으로 박효관과 함께 《가곡원류》를 편찬하였다. 자신의 작품만으로 《금옥총부에 180여 수 시조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서얼로서 중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자괴감에 높음과 낮음에 멀고 가까움과 모짐과 둥긂에, 길기와 짧기 그 가운데서 살얼음판을 밟듯 살아간 평생이 이 시조 한 수에 들어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중용의 삶과 달관한 경지를 보여 준다.



고을사 저 꽃이여 반만 여윈 저 꽃이여/ 더도 덜도 말고 매양 그만 허여 있셔/ 봄바람 향기 좇는 나비를 웃으며 맞기를 바라노라.

-반만 여윈 저 꽃이여- 전문 (안민영)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꽃의 완숙미를 “매양 그만 허여 있셔”로 서얼 출신인 자신은 언제나 반만 핀 꽃과 같은 신분의 서러움에 그래도 봄바람에 향기 좇는 나비같이 살고자 했다.

그는 한 시대 최고의 풍류가객으로 민중의 심금을 어르고 녹였던 가인이었다. 그의 지름시조, 휘모리잡가 등을 전수하는 민족국악 단체인 제천승평계를 통해 그나마 우리는 백 년 전 절세가객의 창을 전해 듣는 호강을 누릴 수 있다.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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