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최춘희 ‘새들은 식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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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최춘희 ‘새들은 식사 중’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4.04.29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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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풍성한 인심이 새들을 불러 모은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봉밥 지어놓고 한 상 아낌없이 내놓자 적막강산 심심한 풍경이 왁자해진다 봄 햇살에 졸다가 새소리에 잠 깬 고양이가 눈 크게 뜨고 지켜보다 먹잇감 낚아챌 기회를 노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들은 식사 중! 지금 아니면 맛보지 못할 겨우내 길어 올린 물로 갓 지어낸 새봄의 정갈한 한 끼,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바람과 햇빛으로 차려 낸 자연의 상차림 앞에 나도 옷깃 여미고 다가가 물 한 잔 내밀어 본다

밤새도록 심장을 쪼던 불면의 새들 배불리 먹고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짧은 봄날의 호사를 그대와 함께 누렸기에 이번 생은 아쉬움이 없다네


“새의 날갯짓처럼 짧게 떠나간 봄철의 호사”

이팝나무는 하얀 꽃이 이밥(흰 쌀밥)을 닮았다고 해서, 혹은 입하 무렵에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팝꽃은 개나리도 벚꽃도 목련도 이미 져서, 녹음이 짙어지기 전 허전해진 들판을 하얗게 수 놓으며 잠시 우리 눈을 황홀하게 한다.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그 이팝나무 가지에 새들이 내려앉았다. 푸짐한 고봉밥 인심에 새들도 신이 났다. 왁자한 노랫가락으로 밥값을 치른다. 그런데 새소리는 그만 고양이를 불러들여 고양이는 호시탐탐 나무 위의 새를 노리지만, 어림없지, 꽃 식사로 배 불린 새들은 고양이를 비웃듯 깔깔거리며 날아오르고, 새의 웃음소리에 이팝꽃도 홍소를 터뜨리는 봄날의 환한 풍경.

눈도 귀도 즐거운 봄철의 흥성거림에 생명의 약동이 느껴진다.

하지만 봄철의 호사는 나뭇가지에 앉았다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처럼 짧다. 눈 돌리는 사이 이미 봄의 절반이 지나 버리고, 입하가 있는 오월이 채 되기도 전에 일찍 핀 이팝꽃은 벌써 난분분, 난분분. 시인은 이런 호사를 ‘그대와 함께 누렸기에 이번 생에 아쉬움이 없다’지만, 그래도 꽃도 새도 떠난 이팝나무 가지는 저 혼자 오래 흔들릴 듯하다.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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