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 왜군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의병과 관군이 유격전을 펼치며 저항했다. 벼슬길에 물러나 태화강 가에 반구정(伴鷗亭)을 짓고 지내던 이응춘(李應春, 1540~1594)은 동생, 아들, 조카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울산 의병장들은 경주 출신 의병장 등과 연합해 왜군 격퇴에 나섰다. 이응춘은 개운포로 상륙하려던 왜군을 크게 격파하고 태화강·경주 등지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개운포는 왜군의 근거지인 서생포에서 울산으로 진출하는 길목이었기에, 개운포에서의 승리는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왜군의 내륙 진출을 막아내는 의미가 있었다. 1594년 10월 개운포에서 또다시 울산 의병과 왜군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까? 이응춘은 개운포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국하기 직전에 아들 이승금(1556~1601)에게 글을 보낸다.
“아들에게 보낸다. 며칠 전에 진영(陣營)을 개운포로 옮겼다. 어제는 많은 적군이 갑자기 이르러, 종일 세 번이나 싸워 바야흐로 그 예봉을 물리쳤다. 그런데 큰 배가 또 수없이 와 닿으니, 힘은 다해 지치고 구원이 없어 형세가 버티기 어렵게 되었구나. 우리 가문은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받았으니 이 큰 재난을 당해 의리상 나라를 위해 목숨을 마치는 것이 마땅하다. 오늘 나는 반드시 죽기를 결심했으니, 너는 모름지기 잘 보존해 선대 제사를 끊지 말아야 옳을 것이다. 전쟁 마당에 어지럽고 어수선해 다 갖추어 말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적과의 전투를 앞두고 순절(충절이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비장함과 아들에게 집안의 제사를 부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집안에서 전해져오던 이응춘 유서는 후손(퇴사재 종친회)들에 의해 2011년 울산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임혜민 울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저작권자 © 울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