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4]]1부. 붉은 도끼 (4)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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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4]]1부. 붉은 도끼 (4) - 글 : 김태환
  • 이형중
  • 승인 2024.05.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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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본 것은 혹시나 영화 촬영팀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사람들은 모두가 동물의 털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은 원시인 차림이었다. 영화 촬영장의 한 복판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주위를 빙 둘러봐도 영화 촬영팀은 보이지 않았다. 버드나무 숲은 그대로인데 멀리 보이던 삼정교 난간이 보이지 않았다.

여섯 명의 사내들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진짜 곰 가죽으로 어깨에서부터 무릎까지 덮는 옷을 입고 있었다. 모두 수염을 달았는데 진짜 수염처럼 보였다. 분장사가 대단히 공을 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보고도 본체만체했다. 내가 서 있는 개울가로 걸어와 그대로 지나쳐 갔다.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았다. 자기네끼리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마도 원시인 분장이니 싸구려 중국인 단역배우들인가 보았다.

“따자 하오. 니 하우 마.”

내가 어설픈 중국어로 인사를 마쳤을 때였다. 천둥을 치는 듯한 굉음이 천지를 흔들었다. KTX열차가 지나가는 소리인가 생각하는 순간 귓속에서 띵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아내가 앞에 있었다. 둘러보니 병실이었다. 팔에 주사바늘이 꽂혀있고 수액이 규칙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미호천의 개울물 가운데 서 있던 몸이 어떻게 순간이동을 해서 병원으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여보. 이제 정신을 차렸어요?” “응? 내가 정신을 잃었었나?” “그놈의 돌이 사람 잡겠어요.”

나는 병실 안을 휘 둘러보았다. 혹시 원시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영화촬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에 지끈지끈 통증이 있었다. 물속에 건져 올린 붉은 무늬가 있는 돌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KTX열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놀라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여보. 누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왔지?”

“누구긴요. 그 마을에 사는 분이었지요. 당신이 그분에게 명함을 주었다면서요? 그분이 아니었으면 저체온증으로 큰일 날 뻔했대요. 사람도 없는 외딴마을 개울에 가서 쓰러지면 어떻게 해요.”

아내의 설명을 듣고 나니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필이면 물 가운데서 쓰러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와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들은 원시인 차림의 단역배우들이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설명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일부러 개울에 나갈 일이 없으니 그 남자가 아니었으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발견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촬영이야기를 했더니 무슨 헛것을 본 것이냐고 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일렁이던 버드나무 숲과 롤러코스터 궤도처럼 구부러지던 삼정교 상판은 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입을 다물기로 했다.

“당신도 참 돌에 단단히 미쳤나 봐요. 점심도 굶고 돌을 주우러가서 쓰러지다니요. 그러니 저혈당 쇼크가 오지요. 내 참 쓰러진 사람이 주먹 안에 돌은 꼭 쥐고 쓰러졌더라네요. 헐.”

나는 주먹 안에 쥐고 있던 돌은 어찌했느냐고 물었다가 또 한 번 아내에게 퉁박을 맞았다. 돌 때문에 쓰러졌으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또 돌 타령이냐는 것이었다. 변명할 말이 없었다.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 훌훌 털고 집으로 가면 되겠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누웠던 상체를 벌떡 일으키는 순간 핑 하고 현기증이 일었다. 구역질까지 났다. 다시 상체를 눕힐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계속 구역질이 났다.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토를 했는데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급하게 간호사가 달려오고 급기야는 담당의사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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