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5]]1부. 붉은 도끼 (5)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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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5]]1부. 붉은 도끼 (5) - 글 : 김태환
  • 이형중
  • 승인 2024.05.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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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주머니에서 작은 손전등을 꺼내 내 눈에 비추어 보았다. 그러더니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내어 보이며 몇 개냐고 물었다. 참 웃기는 질문이었지만 손가락이 자꾸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정확하게 몇 개인지 세어볼 수도 없었다.

“이석증과 저혈당쇼크가 같이 온 것입니다. 이비인후과에서 정확한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하겠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5일을 더 보내야했다. 달팽이고리관 부근의 뼈에 심한 염증이 있어 수술이 아니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부분 수술이지만 전신마취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위적으로 다시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수술은 잘되었고 빠르게 회복이 되었지만 왠지 몸이 공중에 살짝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을 그냥 허비하고 말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외출을 하려고 차를 탔다가 트렁크에 넣어 둔 홍옥석 생각이 났다. 그날 김용삼에게 구입한 홍옥석을 트렁크에 넣어 두었었다. 그동안 아무도 차를 만진 사람이 없으니 돌은 트렁크 안에 그대로 있었다.

바로 옆에 개울에서 직접 주운 주먹 만 한 돌도 같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돌을 집어 들었다. 한쪽 면에는 완두콩만한 붉은색 점이 찍혀있고 반대쪽에는 제법 붉은 무늬가 넓게 들어가 있었다. 붉은 색 이외의 바탕은 거뭇한 반점이 섞인 연녹색이었다.

붉은색 무늬는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형상 같기도 하고 무희의 춤사위 같기도 했다. 돌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좁은 면을 아래로 하고 바라 보았다.

점점 어떤 형상이 떠올랐다. 보면 볼수록 형상은 구체적으로 보였다. 감은 두 눈과 오똑한 코에 입모양도 선명한 얼굴 모양이었다. 더구나 아래쪽으로 홀쭉하게 좁아진 부분은 영락없는 턱을 연상시켰다.

돌의 전체적인 모양이 사람 얼굴 형상으로 보이는데 붉은 문양을 들여다보니 흉측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사람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핏물로 보이는 것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눈 위 이마를 도끼에 찍혀 흘러내리는 핏물로 보였다. 결코 보기 좋은 문양은 아니었다.

수석을 하는 사람들은 돌에 대해 까다롭다. 돌의 끝자락이 뒤로 돌아가거나 윗부분이 뒤로 자빠진 돌은 취하지 않는다. 기가 빠져나간다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다. 남한강 오석이 최고의 돌이라며 선호하는 반면 휘황찬란한 색이 들어간 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붉은 홍옥석은 별도로 취급했다. 일본인들이 악귀를 쫓아낸다는 믿음으로 붉은 돌을 선호했다고 하니 그 말에 따르는 것 같았다. 홍옥석의 붉은 색감은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이 좋아할 만한 진한 붉은 색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도끼에 찍힌 이마라는 생각이 자리 잡자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선명한 도끼의 형상이 떠올랐다. 도끼와 함께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벌써 20년 전에 나와 멀어진 K였다.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남긴 한 마디는 내 청신경을 흔들었다.

“마치 도끼로 머리를 내려치는 것 같았습니다.”

K가 한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도끼로 내 머리를 내려치는 느낌이 어떨까 생각해보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실제로 그런 통증을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간접적인 아픔이 내 머리를 때렸다.

K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시인이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자신의 시가 실렸다고 자랑질을 하고 다녔으니 지역이 아니라 전국에서 알아주는 시인인지도 몰랐다. 나와는 동갑내기였는데 교수와 학생으로 만났다. IMF금융위기로 완전 파산을 맞은 나는 인생 모두를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지역대학의 문창과를 찾아갔었다. K는 문창과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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