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와 히라가나로 쓴 글을 읽기가 상당히 번거로웠다. 보통 일본어 표기는 한자에 조사만 히라가나를 붙여 쓰기 마련인데 히라가나로만 쓰여 진 곳이 많았다. 휴대폰의 번역기능을 사용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나가다보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
아내가 서재로 찾아왔다. 한 번 어딘가에 몰두하면 물불을 못 가리는 내 성격을 잘 아는지라 걱정이 되는가 보았다. 맥없이 개울 바닥에 쓰러지기도 하는 체력으로 밤을 새웠다가는 큰일이겠다 싶어 찾아 온 것이다.
“참 좋으시겠어요. 이 나이에도 재미있는 일이 많기도 하시니.”
“그럼, 사는 날까지 재미는 있어야지. 무료하게 사는 것은 생명에 대한 배반이오.”
나는 말을 뱉어 놓고 피식 웃었다. 가벼운 대화에 너무 거창한 말을 뱉어낸데 대한 자괴감이었다. 아내의 손목을 슬쩍 잡았다. 환갑을 지낸 나이답지 않게 부드러웠다. 내친 김에 손목을 잡아끌어 무릎 위에 앉혔다. 무릎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양팔로 아내의 엉덩이를 감싸 앉았다. 아내가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당신 요즘 이슬만 먹고 살았군. 몸이 여치보다 가벼워.”
“어머. 뭐예요. 말라깽이라고 흉보는 거예요?”
“흉은? 프로포즈하는 거야.”
그날 밤 아내를 힘차게 안았다. 정말 오랜만에 안아보는 아내의 몸은 몰라보게 여위어 있었다. 젊은 시절 풍만하던 젖가슴은 살이 완전히 빠져 나가 빈 껍질만 남아 있었다. 행위 중에도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밤이 깊은 탓인지 아내는 행위가 끝나고 나서 금방 잠이 들었다. 아내를 위해 기꺼이 팔을 내주었는데 좀 더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아내와 같이 잠들려고 눈을 감았다. 힘을 좀 쓰고 나면 쉽게 잠이 드는 게 정상인데 잡생각이 꼬리를 물고 달려들었다. 방금 전에 읽은 일기문 때문이었다.

-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 -
분명 김재성이란 사람이 일본인 순사의 아내를 탐한 것이었다. 치정 때문에 일본인 순사를 살해했다면 독립운동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면서기로 근무하면서 일본인 순사와 친구로 지낸 내용도 독립운동가로 내세우기에는 꺼려지는 부분이었다. 더구나 김재성의 아버지나 형님도 위세를 업고 살았다고 적고 있었다. 글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친일파로 낙인 찍혀야 되는 상황인 것이다. 아무래도 김인후가 작은 할아버지를 독립운동가로 등록하려 한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김재성씨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굳이 일기를 써 놓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신석기 시대에나 사용했던 돌도끼가 일기와 함께 보관 되었던 사실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돌도끼에 생각이 닿자 미호천 홍옥석 생각이 났다. 미호천에서 쓰러지던 날 김용삼에게 구입한 홍옥석과 유촌 마을 냇가에서 쓰러지기 전에 주운 것이었다.
늦게 잠든 탓에 해가 중천에 올라서야 눈을 떴다. 외출준비를 하느라 화장을 하고 있던 아내가 기지개를 켜는 나를 바라보았다.
“더 주무시지 그래요?”
너그러움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간밤의 정사가 영향이 있었으려니 생각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아내도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같이 더 잘까?”
“무슨 말씀이세요. 할아버지. 아침 차려 놓았으니 얼른 드세요.”
할아버지라는 말에 한 방 맞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대충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트렁크를 열고 간밤에 생각했던 홍옥석 두 점을 집어 들었다. 크기는 김용삼에게 구입한 돌이 색감도 더 빨갛고 컸다. 들어오다 우체함에 꽂혀 있는 신문을 챙겨들고 집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