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이 부족하면 일 년이 걸려서라도 꼭 만들어 낼 각오였다. 싱크대 위를 말끔히 치우고 나니 허기가 졌다. 냉장고 안에서 김치 하나만 꺼내놓고 보온밥솥에서 남은 밥을 펐다. 잘 먹는 게 잘 사는 거라고 말들을 하는데 나는 잘 못 살고 있는 것이었다. 먹는 것은 대충 배만 채우면 그만이었다.
순식간에 배를 채우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다시 서재에 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돌도끼를 손에 들고 내가 유촌 마을 미호천에서 주운 얼굴형상의 돌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김재성 노인이 일본인 순사를 돌도끼로 내려쳤을까?
붉은 도끼를 내려놓고 읽다 접어놓은 부분을 펼쳤다. 얼른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싶었다.
에리코의 아버지는 두 사람이 내린 결론에 대해 들어보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딸의 표정만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한 순간도 에리코의 얼굴에서 웃음이 나타나는 걸 볼 수 없었다. 그대로 가다가는 에리코의 얼굴이 대리석처럼 차갑게 굳어질 것 같았다. 나는 권유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버티었다.

조선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바위에 눌린 것처럼 답답해왔다. 해방된 조국에서 나를 어떻게 대할 지도 미지수였다. 일본인의 힘을 믿고 알게 모르게 행세를 해왔던 아버지나 형님이 무사한지도 알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해방된 조국에서 모든 사람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부터 옳지 못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책임이 있다면 나라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이씨 왕가에 있었다. 백성들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있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한 것이다.
일본에는 해방이 되어도 귀국하지 않은 조선인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이 귀국하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 뿐이었다. 귀국해본들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렵기는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동안 살아 온 방법이 있었다. 전쟁이 끝났으므로 더 나빠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되도록 조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피했다.
전쟁으로 젊은 남자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없이 많았다. 잘만하면 전쟁으로 미망인이 된 부유한 여자를 만나 풍족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일본에 머무는 이유는 새로 여자를 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에리코의 집에 소소한 수리를 하다 보니 옆집에서도 수리요청이 들어왔다.
겨울이 가고 다음 해 봄이 오자 집수리 일이 바빠졌다. 전쟁으로 집을 돌볼 여유가 없어 미루어 놓았던 일이 집집마다 쌓여 있었다. 면서기를 했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덕에 기본적인 연장을 다룰 줄은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