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박물관 기증유물 들여다보기]상북서 1900년대 초까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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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박물관 기증유물 들여다보기]상북서 1900년대 초까지 사용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4.08.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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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삼
▲ 얼굴가리개
▲ 사모

2011년 3월에 김문열님이 울산 울주군 상북면 천전리 마을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사용했던 혼례복 일괄(23점)을 기증했다. 김문열님이 기증한 혼례복은 기증자의 할아버지인 고 김송근(1898~1958)님이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울산 병영에 거주했는데, 1919년 병영만세운동에 참여해 옥살이를 한 후, 상북면 천전리 마을로 이주를 했다.

천전리 마을 이주 후에는 마을의 훈장도 하고 마을 일도 주관하기도 했는데, 마을에 혼례가 있을 때는 혼례복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기증자의 할아버지가 마을로 이주하기 전에는 마을의 혼례복이 없어서 혼례복을 입지 않고 혼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이곳으로 이주한 후부터 마을에 혼례가 있을 때 마다 혼례복을 빌려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혼례복을 계속 빌려주다보니 옷이 낡고 찢어지는 등 관리가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자, 마을 공동체 조직인 일심계(一心契)에 돈을 모아 혼례복을 수리·복원했고, 혼례복에서 없는 부분은 기증자의 할아버지가 직접 대구까지 가서 구해 채워 넣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을사람들의 힘을 모아 혼례복을 복원했던 이유로 마을 공동의 혼례복이 되었다고 한다.

기증자가 어렸을 때는 집 처마 및 선반에 혼례복이 든 함이 항상 놓여 있어서, 마을에서 혼례가 있을 때마다 꺼내 주곤 했다고 한다. 그 후 고등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나 있어서 혼례복이 어떻게 관리 되었는지는 모르고 있다가, 2009년 기증자의 어머니가 치매로 쓰러지면서 다시 울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혼례복을 발견하게 되었고, 마을에서 중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에 울산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혼례복은 혼인을 할 때 입는 예복을 일컫는 것이다. 신랑의 경우에는 속에는 평상복을 입었으나 겉에는 예복으로 관복인 남색 또는 북청색 단령(團領)을 착용하고 벼슬과 품계에 맞는 흉배(胸背)를 달았다.

신부의 예복은 신랑의 예복과 달리 조금 복잡한데, 속옷의 경우 평상복과 비슷하지만 속치마로 무릎까지 닿는 두루치기 치마 위로 무지기를 입고, 밑단에 금박이 있는 홍색의 스란치마나 대란치마(스란단을 두 층 붙인 치마)에 자주색 회장을 넣은 삼회장 노랑 저고리를 입었다. 겉옷으로는 원삼(圓衫) 또는 활옷을 입었다. 혼례 당일 머리는 어여머리에 홍색 사(紗)에 금박을 박은 앞댕기와 뒷댕기인 큰댕기를 늘였다. 머리에는 칠보로 장식된 족두리나 화관을, 신 코에 구름무늬 수를 놓은 비단신인 당혜(唐鞋)를 신었다.

이희진 울산박물관 유물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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