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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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경상일보
  • 승인 2025.01.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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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사람으로 인해 나라가 어지럽다. 구속 판결에 법원에 난입한 폭도로 인해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애국과 반공만 외칠 뿐 시대를 읽는 통치철학이 없고 언행일치가 되지 않으며 아내에 종속되어 권력 속에 숨어 망상에 빠진 그는 결국 헌정질서를 무시하다가 감방에 갇혔다. 그는 돈키호테이지 영웅은 아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이문열의 국민소설이다. 현대사 권력의 형성과 몰락을 한 교실에 집약시켰다. 읽고 나서 어린 마음에도 묵직한 여운이 남았었다. 서울에서 전학 온 한병태는 급장 엄석대가 선생님의 신뢰로부터 얻은 권력을 휘두르는 그 왕국에서 저항하다 좌절하고 갈등하며 굴종해 버린다. 그렇게 권력의 단맛에 길들이다가 엄석대의 몰락을 지켜보며 삶에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학교와 사회에서 저런 갑의 권력에 순응할지 저항할지 결정을 피할 수 없다. 양심을 접고 비겁해진다면 현실은 편안해진다. 저항하면 핍박, 폭력, 공포로 괴로워진다. 그 권력은 계속 요지부동일 것 같았기에 유혹은 뿌리치기 어렵다. 담임선생이 엄석대에게 권력을 준 것이 잘못이었다. 자격이 없는 급장에게 너무 큰 권력은 군림하고 중독되게 하며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국민의 은유일 수 있는 담임은 급장에게 센 권위를 줄수록 자신은 편하다. 급장이 다 알아서 하며 자신에 아부하고 달콤한 편익을 주니 좋다, 단 하나 자기 반 애들이 겪는 고초에 눈을 감거나 알아보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그동안 했던 담임으로서 했던 실수들을 헤아려 본다. 좀 강한 카리스마로 사회의 혼란을 잠재우고 나라를 안정시키기 바랬다. 국민을 살해한 12·12사태의 군인이 3김을 묶어 놓고 관제 야당을 만들어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로 12대 대통령이 되는 반민주 쇼를 할 때 전국민적 저항을 하지 못했다. 27년 뒤, 자수성가한 기업가이기에 경제 대국의 리더를 희망하였고, 근대화의 기틀을 다진 장기집권자의 딸이기에 권력을 주었다. 그리고 이 시대 대통령과 재벌을 끌어내리고 불도저 수사하는 검사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태도에 우리의 영웅상을 투사했기에 대한민국의 급장으로 만들었다. 검증되지 않은 정치력과 인성, 그 부인의 좋지 않은 소문은 무시하고서.

새로 부임한 선생은 이제 통찰하고 깨달아 달라진 국민의 은유일 것이다. 그는 이 반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엄석대라는 급장의 무력(검찰 권력)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간파한다. 1등을 하는 석대의 실력이 사실 엉터리임을 밝혀내며 그 권력의 몰락에 시동을 걸어주었다. 석대에 충성하던 애들은 더 강한 권력에 그가 흔들리자 석대의 만행을 폭로하며 불의의 힘은 우르르 무너진다. 우리가 급장의 인성과 능력을 보는 안목이 없고 제대로 감시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불의한 왕국은 세워진다. 치명적인 문제는 우리가 권력을 줄 수 있는 담임이기도 하지만, 병태처럼 급장의 권력에 숨을 죽이고 핍박을 당하는 국민이기도 한 것이다.

병태처럼 굴복하고 권력에 붙은 이가 있지만,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고 편협한 통치력에 고초를 당하면서도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이도 있다. 이렇게 불쏘시개 역할을 하다 타버린 이들의 도움으로 민주화가 되었다. 덕분에 우린 자격이 안 되는 급장을 뽑았더라도 비상계엄을 막는 반 의회와 반원이 결집한 힘과 법치로 잘못 된 권력을 물리치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그 일촉즉발의 연속된 상황 중에 이 시대에 계엄과 독재가 가능했을 여지가 많음을 알고 소름이 돋는다. 우리는 전두환을 끌어내리지 못했었지만 이번에 국회 앞에 모여 비상계엄의 총칼에 맞섰다. 우리가 역사의 심판자가 되어 냉엄히 일그러진 권력을 볼 것이니 민주의 힘은 퇴행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급장의 권력은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카리스마를 그리워하고 리더의 인성을 볼 능력이 부족하다. 이를 밝혀 줄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주류 언론은 부화뇌동하여 국민의 매서운 눈의 역할을 하지 못해왔다. 대통령 중심제를 계속한다면 우리가 준 그 권력을 우리가 줄여야 할 때라고 본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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