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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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 경상일보
  • 승인 202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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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태 울산안전(주) 대표이사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심사원

2025년 6월10일 오전 9시30분, 대구 달서구 한 해체공사 현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숨을 거뒀다. 이동식크레인에 부착된 탑승설비가 전도되면서, 작업자가 5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사고는 새로운 유형의 사고가 아니다. 오히려, 또 한 번의 ‘예견된 반복’이었다.

사고 직후 드러난 정황은 산업안전보건규칙에서 규정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들이 현장에서 무시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35조는 관리감독자가 작업방법을 결정하고 보호구와 장비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관리감독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제44조에서는 고소작업시 반드시 안전대 부착설비를 갖추도록 되어 있으나, 이번 탑승설비에는 그조차 설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제86조는 이동식크레인을 이용한 작업자 탑승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에도, 전용 탑승설비 사용과 전도·추락방지조치를 철저히 갖출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 현장에서는 비규격의 자체 제작 설비가 사용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또다시 무시된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10월11일, 경북 경주의 한 공장 신축 현장에서 굴착기에 매단 임시 탑승설비로 작업 중, 슬링벨트가 후크에서 이탈해 작업자 2명이 추락사했다. 전용설비는 아니었고, 안전대 착용도 없었다. 2024년 8월, 충북 청주의 물류센터 현장. 이동식크레인의 진동으로 탑승설비가 흔들리다 추락했고, 작업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역시 자체 제작된 비규격 설비였고, 안전대는 미체결 상태였다. 이들 사고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전용 설비가 아닌 임의 제작, 안전대 미착용, 무기능화된 관리감독. 무엇보다, 위험성평가는 형식적인 서류에 그칠 뿐, 실제 작업환경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진국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이동식크레인 안전관리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그 기본 원칙은 간명하다. 작업자 탑승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불가피하게 허용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 첫째, 전용 탑승설비는 반드시 TUV(기술검사협회)의 인증을 거쳐야 하며, 강도, 구조 안정성, 전도 방지, 진동 감쇄, 비상 탈출 기능 등 기술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둘째, 이중 안전장치 체계가 기본이다. 작업자는 탑승설비 안에서도 안전대를 착용하고, 구명줄을 구조물에 별도로 연결해야 한다. 셋째, 작업 전 철저한 현장 점검과 체크리스트 점검이 필수다. 지반 상태, 기계 이상 유무, 작업 반경 내 장애물 여부, 기상 조건, 통신장비 작동 상태까지 확인하며, 단 하나라도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작업은 즉시 중단된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기본을 타협하지 않는 문화만이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우리 산업현장은 여전히 일정 압박, 비용 절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다. 비용을 아끼려다 생명을 잃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양중기에 사람을 태우는 작업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도 반드시 산업표준을 반영한 전용설비와 이중 안전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특히 탑승설비 내에서는 안전대 체결이 절대 조건으로 작동해야 하며, 위험성평가는 종이 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실제 작업 조건에 반영되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사고를 ‘개별 사고’로 보아서는 안 된다. 같은 구조, 같은 원인, 같은 결과가 반복되는 것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내일도 누군가가 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

“현장의 안전은 규칙을 지킬 때가 아니라, 지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유혹을 이겨낼 때 확보된다.” 이 단순한 진실을 모든 현장이, 모든 관계자가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오늘부터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정안태 울산안전(주) 대표이사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심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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