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도시의 품격은 문화에서 시작된다. 공공 장소에 설치된 조형물이 때로는 그 도시의 수준을 말해준다.
필자는 해맞이 명소인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을 가끔 들르는데 일부 조형물을 볼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울주군은 지난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여러 조형물을 설치했는데, 농협이 제공한 것은 남근석과 여근석이다.
이 조형물은 울주군이 몇 년 전 한 민간단체의 요청으로 남근석을 재활용해 다시 정비를 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남근석 메인 조형물엔 특정 단체의 심볼과 명칭,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남근을 의미하는 둥근 돌 2개는 울릉도와 독도 상징물로 둔갑했고, 여근석은 뒤편에 뚝 떨어져 있다. 당초 다산을 기원한다는 취지를 완전히 뭉개버린 것이다.
엉터리는 이뿐이 아니다.
세계적 해넘이 명소인 포르투갈 호카곶 상징물을 본 따 설치한 조형물에는 원본에 있는 십자가가 없다. 반쪽짜리 조형물을 만드는데 무려 9억9000만원이 쓰여졌다.

한 디자인 전문가는 “조잡하게 설치된 조형물은 잡동사니 쓰레기와 다를바 없다”라고 말한다.
광역시 가운데 최초로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울산시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도시의 수준은 문화에서 비롯되는만큼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조형물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달우 전 UBC 울산방송 보도국 선임기자·다루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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