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1장 만남 / 보부상 서신 1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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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1장 만남 / 보부상 서신 1호(6)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7.08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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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울산 무룡산과 기박산성 일대에서는 왜군과 의병 등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장편소설 <군주의 배신>의 주 배경이 되고 있는 기박산성 전경. 울산시 제공

여인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숨소리가 고른 것으로 봐서 별다른 문제는 없는 듯이 보였다. 그는 천천히 여인을 살펴보았다. 창백했던 얼굴에 발그레한 빛이 감돌았다. 뛰어나게 잘생긴 미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기 싫을 정도의 밉상도 아니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코와 적당한 크기의 눈을 가진 다소 귀여운 모습의 여인이다.

전란 중인 조선의 대다수 백성들이 그러하듯이 여인의 옷차림 또한 자신과 다를 바 없었다. 비단치마와 저고리는커녕 무명옷임에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많이 해져서 천 조각이 몸을 다 가리지 못한 탓에 여인의 살결이 여기저기 드러나 보였다.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여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기억이 없다. 천한 신분으로 자랐기에 여자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었고, 지나가는 여인들은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처지라서,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자는 듯이 누워있는 여인을 바라보는 그의 감정이 매우 복잡 미묘해졌다.

비록 십팔 세의 나이지만 허우대는 이십 대 청년 못지않게 건장한 그이기에 여인에게서 나는 살 냄새에 이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 땅에서 짐승 취급당하며 살고 있는 그이기에 굳이 예의범절 따위를 지킬 필요는 없었다.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은 사람의 신분으로 사는 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가축처럼 사고파는 노비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백정이라는 신분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양반들 몰래 한학을 배우면서 사람답게 살겠다고 다짐한 바가 있었기에 그는 잡념을 떨쳐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여인을 보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 혼절했던 여인이 깨어났다. 여인은 잠시 어리둥절한 기색이었지만 그다지 놀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옷차림을 의식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서 천동이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몸은 괜찮습니까?”

“네.”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여인은 아직까지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지만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청년을 살펴보았다. 그는 남달리 건장한 체구에 얼굴은 앳되고 선한 인상이다. 여인은 청년의 그런 모습을 보며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가 어딘지요?”

“안심하세요. 여기는 짐승이나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는 저만의 거처입니다.”

“감사합니다.”

“아, 네.”

대화가 끊어지고 침묵이 흘렀다. 청년은 여인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으나 묻지는 못했다. 낯선 여인에게 그런 걸 물어보면 당사자인 그녀가 난처해 할 것 같아서였다. 그다지 오랜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 끼여 있는 여전한 어색함이 그 시간을 유난히 길게 느끼게 만들었다. 둘 사이의 낯선 침묵을 깨는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꼬로록.”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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