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63)]공유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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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63)]공유지의 비극
  • 경상일보
  • 승인 2025.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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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여름이 겨울보다 낫다. 옛 어른들이 흔히 하던 말이다. 추위를 견디려면 방을 따뜻하게 하는 연료와 두꺼운 옷가지가 필요하지만, 더위는 자연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흐르는 개울과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 밑에서 더위를 피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또 두꺼운 옷과 땔감은 귀했지만 흐르는 물과 산들바람이 부는 그늘은 근처에서 손쉽게 발견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연이 주는 불편을 자연 속에서 해결하는 지혜는 겨울보다 여름에 더 다양하게 발달했다.

아파트와 같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는 겨울나기가 여름보다 훨씬 수월하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과 이중창은 방한과 보온에 유리한 시설이다. 그리고 방한용 오리털 점퍼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 옷장 속에는 한 해 두세 번 경험하는 혹한을 대비한 두꺼운 파카도 준비돼 있다. 겨울 준비는 빈부와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 됐다.

여름이 겨울보다 지내기 편하다는 말은 이제 틀린 말이 됐다. 혹한보다는 폭염이 더 무섭고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한여름에도 문을 꼭꼭 닫고 더운 열기를 품어내는 에어컨에 의지해 산다. 실내가 시원해지면 바깥은 그만큼 더워지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러한 여름살이 형태는 모든 가정이 에어컨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유지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내뿜는 열기가 이웃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에어컨 보급률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면 마음이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래전에 배운 경제학 내용 중에 아직도 기억하는 이론이 있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이론이다. 주인이 없는 공유지에 풀이 자라면 사람들이 가축을 풀어 키운다. 그 수는 점점 늘어갈 것이다. 땅의 앞날을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공유지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목초지는 풀이 없는 황폐한 땅으로 변하고 누구도 가축을 키울 수 없는 곳이 돼 버린다. 에어컨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건물을 지나다 보면 젊은 시절 배운 경제학 이론이 떠오른다.

인간은 자연의 인내력을 한없이 신뢰한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자연환경은 항상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인간을 받아들일 것이다. 심지어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무기를 이 땅에 다 퍼부어도 여전히 옛날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지금 중동이나 동유럽에서는 세계의 무기들이 마음껏 성능을 실험하고 있다. 여차하면 핵무기도 사용할 것이라 엄포를 놓는다. 밤하늘에 날아다니는 수많은 미사일을 보면서 지구라는 공유지를 끝도 없이 약탈하는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그 미사일의 영향이 전쟁 당사국에만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우리가 살아갈 터전인 지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느낌도 든다. 강이 범람해 인간의 마을을 덮치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이웃 중국의 마을이 홍수로 통째로 사라졌다는 소식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수십 명의 어린아이들이 수련회 장소에서 물에 휩쓸려 가는 일도 있었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더위로 사람이 죽는 일이 유럽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제 지구상에서 일어나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지구는 공유지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미래 세대들의 권리도 함께 포함된 공유지다. 국경이 그어져 있다고 해 자기 나라의 땅과 하늘을 무한정 소비하고 훼손해도 될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다. 온갖 무기로 불기둥을 만들어 내는 저들은 자신들의 후손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고 있다. 전쟁광들이 저지르는 무자비한 행위에 대한 처벌은 누가 할 것인가. 신도 인간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땅에 존재하는 물과 바람이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을 심판하는 일은 종교가 아니라 이 땅의 피조물들이 집행할 것이라고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주장한다. 그의 말이 점점 실현되는 것 같아 두렵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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