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小공원 산책하기](5)길에서 길을 배운다-정지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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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小공원 산책하기](5)길에서 길을 배운다-정지말공원
  • 경상일보
  • 승인 2025.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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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방향 틀어 송덕비 묵독하고
뒤쪽에 벚나무들 일일이 칭찬하고
앞쪽에 은행나무들 곧게 자람 치하한다

곡선 길 오솔길을 반갑게 맞이하고
소나무 지켜내는 노역을 위로하고
우듬지 싹을 틔우는 배롱나무 우러른다

파고라 앉아 있다 책 향기 따라가니
왼쪽에 자리 잡은 도서관이 손내민다
서로의 만남이 좋아 헤어질 일 아득하다


남외동에 소재한 어린이공원이다. 산전샘 끝 마을에 예부터 정지말놀이터가 있었는데 그것이 정지말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토요일 오후에 찾아간 이곳에는 아이들이 그네를 타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공원길이 시원스럽게 보였다.

▲ 글·사진=박서정 수필가·소설가
▲ 글·사진=박서정 수필가·소설가

넓고 긴 길 오솔길 좁은 길 속삭이는 길 저절로 난 길 갈라지는 길 모이는 길 유독 길들이 많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먼저 방향을 정한다. 은행나무를 앞쪽에 벚나무를 뒤쪽에 둔 채로 어떤 비가 보인다. ‘해석 정해영 선생 송덕비’다. 후면에는 그분이 걸어온 길을 가득 새겨 놓았다. 내용을 모두 묵독하니 왜 여기에 그 송덕비가 있어야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생전에 인재를 기르는 ‘동천학사’를 서울 성북동에 지어 서울 유학이 어려운 지역 인재들을 기숙케 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었다. 이곳에 오는 모든 아이들이 정해영 선생의 귀한 업적을 기억하고 울산의 자랑스러운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마침 주변에는 노란 꽃의 야생화들이 무더기로 피어나 송덕비를 추앙하고 있는 듯했다.

터가 넓은 곳이어서인지 공간 활용도 넉넉하게 돼 있다. 나무들의 간격도 적당하고 수목도 다양하다. 길도 다양하여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가도 되고 싫증이 나면 또 다른 길을 선택해도 될 것 같다. 길에서 길을 배운다는 말을 실천하는 공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디딤돌이 한 사람 밟기 딱 좋을 정도의 크기로 놓여 있다. 평소 직선 길보다 곡선 길에서 여유로움과 부드러움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길이 거의 곡선 길이어서 그것을 맘껏 누릴 수 있다. 오솔길처럼 속삭이는 길을 지나니 황톳길이 이어진다. 모두 평평한 길이어서 야자매트를 까는 일은 필요치 않아 보인다. 미끄러질 이유도 없고 오르기 힘든 길도 없으니 발 디딜 때마다 편안함을 느낀다. 울퉁불퉁함이 전혀 없는 평지 길을 느긋하게 걸어본다.

원형화단에 세 그루의 소나무가 합숙하고 있다. 한 나무는 길 쪽으로 기우뚱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지대가 세워져 있다. 중심을 못 잡고 힘들어하는 저 나무에게 지금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세주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생활이 힘들어 기우뚱거릴 때 어른들이 힘을 주는 역할자가 돼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조치를 해 준다면 그 누구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공원의 오른쪽에는 송덕비를, 왼쪽에는 도서관을 배치했다. ‘가까운 도서관 책 읽기 좋은 중구’라는 작은 건물이지만 저기에 있는 책을 아이들이 모두 읽는다면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훌륭한 분의 송덕비를 가슴에 품고 책을 펼친다면 잡념은 어느덧 우주 밖으로 사라질 테다.

도서관 뒤에는 화장실이 보인다. 책 속에 빠진 아이들이 끝까지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갈 수 있도록 한 배려로 보인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여기에는 길이 많다. 길이 필요할 때 이곳으로 오라.’ 갑자기 나는 웅변가가 되어 마음속으로 외친다. 정지말공원의 조화로움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뿌듯해진다.

글·사진=박서정 수필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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