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새벽처럼 후미에서 왜적들을 교란하는 것은 이 사람이 혼자서 할 것입니다. 적이 조총을 다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곳을 지나지 못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섣부르게 공을 탐내서 약속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장군들이 없어야 합니다.”
그날 밤 의병진영에서는 작전계획에 따라 계곡의 오른편에 황희안 장군과 김득복 장군이 이끄는 300여 복병을 배치하고, 골짜기를 지나는 길 앞쪽에서 왜적을 막는 것은 이눌 장군이 맡았다. 지난 새벽과 마찬가지로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후미에서 다시 적들을 교란시키는 일은 천동의 몫이었다.
이슥한 밤이 되자 과연 적병들이 조심스럽게 곡구로 들어섰다. 그때에 솔밭에 있던 복병이 일시에 횃불을 드니 화광이 낮과 같아서 사람의 그림자가 산을 둘렀고 이를 본 왜적들은 겁을 먹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때가 되어 이눌 장군이 이끄는 궁수들이 불화살로 적을 공격하였고, 혼란에 빠져있는 적군의 후미를 천동이 홀로 공격하였다. 이에 왜적들은 혼란한 가운데 도망치다가 밟혀 죽고, 더러는 화살에 맞아죽었으며, 일부는 천동의 칼에 죽었다. 그는 거의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연마한 검술을 적들에게 펼쳐 보이며 종횡무진 적들을 공격하였다.
의병군의 완벽한 작전에 왜적들은 제대로 대항하지도 못하고 허둥대다가 배를 타고 다시 남해 방면으로 도망을 쳤다. 천동은 인근 야산으로 후퇴하면서 칼등으로 쳐서 기절시킨 왜병에게 재갈을 물린 후에 소나무에 묶어 놓았다.
동틀 무렵에 의병연합군이 확인해 보니 죽은 왜병의 수가 일백오십육 명이었다. 의병진영의 완벽한 승리였다. 의병들은 승리를 자축하는 한편 조정에 올릴 장계를 준비했으나 이눌 장군의 만류로 포기하였다.
언제 왔는지 장군이 천동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오늘도 수고 많았다.”
“아닙니다.”
“집으로 곧장 가려느냐?”
“네, 장군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 해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거라.”
어둠 속에서 장군을 잠시 쳐다보다가 천동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정 대신들이나 주상은 전쟁이 터지자 도망칠 궁리부터 했는데, 어찌하여 장군은 가복들을 죄다 전쟁에 동원하고, 사재까지 털어서 왜군들과 목숨 걸고 싸우시는 겁니까?”
“조선은 양반 사대부의 나라다. 내가 명색이 양반인데 이 나라 지키는 일을 백성들에게 떠넘겨서야 어찌 그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겠느냐?”
천동은 장군의 의중을 듣고, 문득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이 이눌 장군만 같았어도 왜가 조선을 얕보고 쳐들어오는 짓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천동은 장군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에 결박해 놓았던 왜병을 데리고 더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