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76)하여가何如歌 이방원(1367~1422)-한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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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76)하여가何如歌 이방원(1367~1422)-한분옥
  • 경상일보
  • 승인 2025.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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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고뇌와 결단력이 만든 미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럼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해동가요>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조선 오백 년을 열고 닫은 경복궁을 찾을 때마다 감회는 새롭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생각할 때면 대왕의 부왕(父王)인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를 떠올린다. 태종 이방원이 조선 개국의 주역이라면 민비 역시 역할은 대단하였다. 태종은 난세에서도 학문에 깊이 침잠하며 왕도와 패도에 정통한 문장가였다. 그는 무인이면서 대과에 장원급제한 왕이었다. 민비 역시 태종에 걸맞는 헌헌한 여장부였다. 재기가 뛰어났고 아름다웠으며 그들 부부는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는 지기(知己)이며 정(情)은 남달랐다.

경복궁을 거닐면 깊은 감회에 젖는다. 그 많은 궁인을 거느리고 스란치마 끌던 궁궐의 주인은 어디 가고 정전도 침전도 다 비어 있다. 역사의 수레를 타고 떠나고 없는 궁궐의 주인은 바로 백 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조선의 황제요, 우리 민생의 어버이었다.

태종 임금은 용이었다. 용은 자신의 몸을 키우는가 하면 줄이기도 하고 나타나는가 하면 숨기기도 한다. 태종의 삶은 난세가 만들어 낸 영웅의 한 생애 바로 용(龍)이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태종의 인간학을 읽어냄에 있어서 용을 바다에 놓아 준 생애라 여겨진다. 용은 나타날 때 승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숨을 땐 이슬 방울 속에도 들어간다고도 한다. 몸을 키웠을 땐 하늘을 가릴만하고 줄이면 겨자씨보다 작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임금이 뜻을 얻어 천하를 누비는 것과 잘도 비교한다.

아비로서의 혈육의 정을 단호하게 끊고 적장자인 양녕을 패하고 조선의 군주로서 충녕을 택할 수밖에 없던 그 깊은 고뇌와 결단력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국운을 왕성하게 이끌었던 세종대왕 시대를 열어주었다. 그의 선택은 정말 거룩하였다.

고려말 이방원은 정적인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시조 ‘하여가’를 지어 보냈으나 정몽주는 고려에 충성하기를 맹세하는 ‘단심가’로 화답했다.

모든 악역은 자신이 다 짊어지고 다음 세대 성군의 시대를 열어갈 터를 닦았다. 조선왕조 오백 년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에도 진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 사람, 그런 인물이 기다려진다.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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