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장석남 ‘무쇠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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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장석남 ‘무쇠솥’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7.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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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길 주방기구종합백화점
수만 종류 그릇의 다정한 반짝임과 축제들 속에서
무쇠솥을 사 몰고 왔다
― 꽃처럼 무거웠다
솔로 썩썩 닦아
쌀과 수수와 보리를 섞어 안친다
푸푸푸푸 밥물이 끓어
밥 냄새가 피어오르고 잦아든다
그사이
먼 조상들이 줄줄이 방문할 것만 같다

별러서 무쇠솥 장만을 하니
고구려의 어느 빗돌 위에 나앉는 별에 간 듯
큰 나라의 백성이 된다

이 솥에 닭도 잡아 끓이리
쑥도 뜯어 끓이리
푸푸푸푸, 그대들을 부르리



함께 밥짓고 나누는 삶에 대한 동경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잘 닦인 무쇠솥을 보면 아파트라 화덕 놓을 자리가 없는 데도 하나 갖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임금의 친경(親耕)이 끝난 뒤 근동의 노인들을 불러 소를 잡아 먹였다는 설렁탕의 유래를 생각하며, 나도 무언가 오래오래 곤 음식을 이웃을 불러 함께 나누고 싶어진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다 서로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며 깔깔깔 웃고 싶어진다.

시인이 벼르고 별러서 반짝이는 수많은 그릇 가운데 무쇠솥을 고른 것은 이런 공동체적 나눔에 대한 바람이 있어서이다. 백석의 동화시 ‘개구리네 한솥밥’처럼 한솥 가득 밥을 지어 푸지게 나누어 먹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이 시는 조금 더 근원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둔다. 먼 조상, 고구려, 큰 나라의 백성은 무쇠솥에서 느껴지는 역사와 전통, 유구한 민족의 뿌리, 과거와 현재를 잇는 어떤 본질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쇠솥은 ‘꽃처럼’ 무겁다. 물리적인 무거움을 넘어서서 아름답고 귀한 것의 무게이다. 시인은 무쇠솥을 닦아 정성껏 밥을 안친다. 이내 생명의 온기와도 같은 밥 냄새가 퍼진다. 푸푸푸푸. 밥이 끓는 소리는 무거운 무쇠솥을 몰고 온 힘듦을 잊게 하는 역동적이고 활기 넘치는 소리, 어쩌면 음식을 나누며 대동의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생명의 소리이다.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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