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은 정신없이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왔지만, 여기서 잠시 지내고 보니 다른 곳에 가서 혼자 산다는 게 자신 없었다. 벌써 의타심이 생겨서인지, 천동이 동굴에서 나가라고 하면 절벽에 몸을 던져서 목숨을 끊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천동은 순순히 자신을 붙들어 주었다. 앞으로의 일은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으나 그녀는 끝내 잠들지 못했다.
고기 굽는 냄새에 천동은 잠을 깼다. 국화가 늑대고기를 나무에 꿰어서 굽고 있다가 천동을 보며 아침 인사를 했다.
“일어났어?”
“네, 더 자지 않고. 언제 일어났어요?”
“응, 좀 전에. 다녀오느라고 힘들었을 텐데, 좀 더 누워있어.”
“아닙니다. 나 잠시 밖에 나갔다 올게요. 이곳은 사람들의 눈에 띌 염려가 없는 안전한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밖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천동은 또다시 바람처럼 휙 동굴을 나갔다. 동굴의 노출에 대해서 한 번도 걱정을 한 적은 없지만, 어쩌다가 같이 지내게 된 아녀자가 있기에 신경이 더 쓰여서 동굴 주위는 물론 조금 멀다 싶은 곳까지 내려가서 살펴보았다. 예민한 그의 감각으로도 아무런 위험이 감지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바위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왜병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일에 그도 적극 가담하고 있지만, 정말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 천동이지만 이눌 장군의 부름에는 거절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다.
생각이 다시 국화 누이에게 이르자 이 역시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자신도 이제 어엿한 사내인데 자신보다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자인 그녀와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을지, 그녀를 내보내지 않고 같이 지내는 게 도리에 맞는 것인지도 현재로서는 판단이 안 선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들 중에서 명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동굴로 급히 돌아갔다.
“멀리 갔다 왔나봐?”
“네, 산 중턱까지 갔다 왔어요. 계속 뛰어다녔더니 배가 고프네요.”
“알았어. 얼른 먹자.”
잘 익은 고기 위에다 곱게 갈아 놓은 소금을 얹어 먹으니 맛이 그만이었다. 전란이 있기 몇 년 전에 시댁에서 신랑과 함께 먹은 고기보다 더 맛이 있었다. 천동이 내놓은 소금은 일반 소금이 아니라 대죽통에 넣어서 두 번 불에 구운 것이어서 색은 연한 갈색이지만 몸에 좋다고 했다. 그 소금은 양이 너무 적은 탓에 특별한 날 음식에다 조금씩 넣어서 먹는다고 했는데, 오늘이 그날이라고 했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에 천동은 누이에게 나머지 고기들을 훈제하라고 하고 만드는 방법까지 세세히 일러줬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