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2장 / 포르투갈의 바탈랴 수도원(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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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2장 / 포르투갈의 바탈랴 수도원(20)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7.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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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울산 무룡산과 기박산성, 서생포성 일대에서는 왜군과 의병 등의 전투가 벌어졌다. 장편소설 <군주의 배신>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서생포성 전경. 울산시 제공
“한 열흘은 못 들어올 겁니다. 합천과 고성 일대를 다녀올 생각입니다. 동굴 밖으로는 오십 보 이상 나가지 마세요. 산짐승도 위험하고, 또 굶주린 유민들이라도 만나면 어찌될지 모르니 갑갑하더라도 멀리 나가지 말아요. 요즘 같은 전란 중에는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그에게서 동굴에 있는 한 안전하다는 얘기는 이미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가 며칠간 동굴집을 비운다고 하니 그녀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혼자서 미친년처럼 이리저리 떠돌며 살 때도 이렇게 두렵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녀는 동생 같은 그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았다.

‘며칠이나 같이 있었다고 내가 이러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그녀의 마음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는 게 이런 것이리라. 이런 자신의 변화에 그녀는 속이 상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양반가의 며느리였던 사람인데, 참으로 한심하게 변한 것 같아서 슬펐다.

외모로 봐서는 별로 자상할 것 같지 않은 천동이 피붙이처럼 자상하게 얘기해주자 국화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외면한 채 다소 잠긴 목소리로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알았어. 잘 다녀와.”

천동은 그녀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며 동굴을 떠났다. 산 중턱에서 그는 변장을 하기 시작했다. 성한 곳이라고는 없는 누더기 옷을 입고, 봉두난발한 머리에는 재를 듬성듬성 뿌렸다. 완전한 거지 행색에 몸까지 불편해서 지팡이에 의지해서 걸어가는 거지 움막의 사내쯤으로 보이게 했다. 이제 산 아래의 민간 근처에서 소똥을 얼굴에 조금 바르면 변장은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내려갔다. 마을에는 온전한 집이 거의 없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검게 변해가는 지붕들은 얼굴에 검버섯이 핀 노인을 연상케 했다. 더러는 불에 타다가 만 집들도 있었고, 서까래가 내려앉은 집도 있었다. 들판의 곡식들은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어 있는데, 그나마도 거둬들이는 사람이 없어서 새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송내마을을 지나 달천에서 생산한 쇠를 실어 나르던 쇠내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왜병 수십 명이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일부는 조총을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는 왜검을 지니고 있었다. 발을 절뚝거리며 걸어가던 거지 행색의 천동과 왜병들의 시선이 마주쳤으나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지껄이고 있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부자연스런 걸음답지 않게 빠른 속도로 쇠내에 도착한 그는 촌각의 망설임도 없이 쇠내로 뛰어들어 헤엄을 쳐서 나아갔다. 그러나 강여울에 떠밀린 그는 한참을 내려가다가 겨우 시리마을 쪽 뭍에 닿을 수 있었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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