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병을 사칭한 도적패들이 있다고 하더니, 가지산 자락에서 정말로 그들과 마주친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밉다는 생각보다 웬일인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마음을 다잡고 운문산을 벗어난 후 소산을 거쳐서 첫 목적지인 현풍에 도착하여 석문산성을 둘러보았다. 산성을 둘러보기 전에 그는 도랑에서 분장을 했던 얼굴을 말끔히 씻고 비록 누더기 옷이지만 옷매무새도 가다듬었다. 석문산성은 홍의장군의 성품답게 꼼꼼하고 견고하게 성곽이 수축되어 있었다. 천동은 다짜고짜 성문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홍의장군을 뵙고 싶습니다. 만나게 해 주세요.”
“시끄럽다 이놈아! 비렁뱅이 주제에 감히 장군님을 만나려고 하다니? 네놈이 아무래도 실성을 했구나. 썩 꺼지거라.”
성문을 지키던 군졸 두 명이 달려들어서 그를 밀쳐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용을 써도 비렁뱅이가 꿈쩍도 하지 않자 성문지기들은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냥 비렁뱅이 같지는 않은데, 뭐하는 놈이냐?”
“장군님을 뵙기 위해서 울산땅에서 달려온 양가 천동이라고 합니다.”
“잠시 기다려라.”
성문지기 중 한 명이 제법 빠르게 성안으로 달려가더니 잠시 후에 기별이 왔다.
“나를 따라오거라.”
문지기 병사는 여전히 그를 무시하는 말투로 조금은 짜증이 나는 듯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앞서가던 군졸이 힐끗 뒤를 돌아보다가 다소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행색이 남루해서 그렇지, 다시 본 몸체며 얼굴은 헌헌대장부였다. 그렇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천동을 안내했다. 조금 후에 그는 홍의장군을 만날 수 있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장군은 호랑이의 기운을 받은 분으로 범인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서 꼼짝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홍의장군은 자신의 면전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버티던 맹랑한 아이를 생각해냈다. 그 당시 아이의 출신이 그를 안타깝게 했었다. 천동은 장군 앞에 엎드려서 인사를 드렸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그래, 오랜만이구나. 오는 길에 어려움은 없었느냐?”
“네, 변장을 하고 와서 그런지 시비 거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왜병들과도 마주쳤지만 아무 일 없었습니다.”
장군의 군막 안에서 함께 차를 마시게 된 천동은 감히 장군과 마주하기가 죄송스럽게 생각되어서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찻잔을 들었다. 그런 그를 장군은 만류하며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