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버둥쳐도 막을 수 없는 노화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청구영언>

인생은 가는 것이고 세월은 오는 것이다. 가는 세월 속에 쌓인 것은 연륜이고 남은 것은 백발이다. 애달픈 것도 미련두는 것도 아니지만, 사실 염색의 효과로 검은 머리를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찌 노부모님 앞에 흰머리를 이고 다닐 뻔하지 않았는가. 주어진 인생 백년이 그리 길지도 않지만 그렇게 또 짧은 것만도 아니다.
반 백년 넘게 살아보니 청년 시절의 그 풋풋함이 엊그제 같기도 하고 또 어찌 생각하면 그 시절이 까마득한 옛날 같기도 하다. 할 일 없이 그저 자신의 목숨이나 부지하며 살아간 많은 민중이 있었는가 하면, 주어진 백년 안에서 뜻을 펼치고 이뤄 간 영웅들도 있었다.
인류가 구현해 낸 역사 속에서 인생 백년을 살면서 찬란한 문명을 구축해 놓은 것을 보면 그 백년이 그리 짧은 것 만도 아니다. 누구나 백년을 다 살아간 것도 아닌데도 주어진 삶 속에서 문명의 역사를 써 내려간 사람들에게 경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백년 인생의 지혜를 다음 세대들에게 넘겨주고 또 이어가면서 문명사회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과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전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를 느낀다.
하루하루를 채우기도 벅차서 바쁘다고만 외치고 있다. 자신의 몫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님, 또 자신도 인류의 대를 이어갈 부모가 돼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 제일 급 선무다.
바랭이도 씨앗을 흩뿌리고 뱁새도 새끼를 치는데 인간으로 태어나 짝을 만나 자식 낳아 봉사하고 길러내는 일이 제일 기본 임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인생 반 백년을 살아보니 그 어떤 일보다 자식 낳아 기르는 일이 제일 보배롭고 거룩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은 제 나름의 분복이지 바보 속에서 천재 난다는 말도 거짓 아니지 않던가. 이웃을 둘러보면 그렇다.
우탁은 호 역동(易東)이 암시하듯이 뛰어난 역학자였다. 위 시조는 전해지는 시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가는 홍안을 누가 막으며 오는 백발을 또 누가 막는단 말인가.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