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AI)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챗GPT가 세상에 등장한 지 2년 반. 그 짧은 시간 동안 AI는 단순한 실험용 도구를 넘어 창작, 기획, 분석 등 고급 인지 활동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최근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수만 명의 개발자와 관리자들을 구조조정하고 있다는 뉴스는 단순한 인력 감축을 넘어, 기술에 의해 인간의 역할이 구조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국내 기업들도 AI를 도입하며 중간관리자, 기획자, 사무직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있으며, 이 흐름은 갈수록 가속화할 전망이다.
AI의 발전은 생성형 AI(Generative AI), 에이전틱 AI(Agentic AI), 피지컬 AI(Physical AI) 세 방향으로 확산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콘텐츠 작성과 창의적 작업을, 에이전틱 AI는 복잡한 과업을 자동화하고, 피지컬 AI는 물리적 공간에서 노동을 대체한다. 이 세 가지 인공지능 기술은 산업뿐 아니라 고등교육의 방식과 구조에도 직접적인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존에 정형화된 학과, 학사구조 중심 교육체계로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와 다양성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교육과정이 1학년 입학 시 설계된 후 4년 내내 그대로 유지된다면, 그 학생이 졸업할 즈음에는 이미 세상의 요구와 3~4년의 격차가 벌어져 있는 상태가 된다. 변화가 몇십 년 주기로 일어나던 산업사회와 달리, AI 기반 사회는 분기별로 새로운 기술과 직무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시대다. 이 속도와 변화에 유연(flexible)하고 민첩(agile)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고등교육은 시대에 뒤처진 낡은 체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 대학은 ‘Just-In-Time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교육과정을 재설계해야 한다. 이는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을 즉시 학습하고, 빠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실시간·모듈형 교육시스템을 의미한다. 한 번 짜인 커리큘럼을 4년간 고정 운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교육 내용을 업데이트하고, 다양한 모듈형 콘텐츠를 선택·조합해 사회요구에 즉응하는 학생 맞춤형 학습 경로를 설계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정형화된 학과 체계 대신 융합형 전공, 마이크로 러닝, 비교과 학습의 공식 인정이 확대되어야 하며, 특정 기업이나 산업과의 공동 커리큘럼도 하나의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 + 금융’, ‘AI + 디자인’, ‘AI + 비즈니스’ 등 산업 수요 기반의 융합과정을 유연하게 개설하고, 최신 기술 변화에 따라 빠르게 업데이트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운영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실습과 프로젝트, 인턴십과 현장 중심 수업(필드캠퍼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교육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AI 튜터나 에이전트 AI를 활용한 학생 맞춤형 피드백과 학습 설계 지원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평가도 지식 전달 중심에서 벗어나 역량 기반 포트폴리오 평가, AI 협업 평가(발표), 실전 문제해결 결과 평가 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체계 혁신은 단지 기술의 도입이 아닌, 교육철학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을 미리 정해진 틀에 따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학습자가 AI와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 나가도록 돕는 유연한 플랫폼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는 단지 교육과정의 개편을 넘어, 교수자의 역할 전환, 학사제도의 재설계, 산학 협력 확대, 교육조직의 기민한 운영체계를 포함하는 전방위적인 혁신이어야 한다.
결국 2030년을 바라보는 고등교육은 더 이상 과거의 연장선에서 설계될 수 없다. 대학은 이제 묻고, 답해야 한다. “우리는 AI로 변화하는 사회, 산업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가?” “사회와 학생이 요구할 때, 필요한 역량을 즉시 배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이제 미래형 대학은 기술보다 빠르게 배우는 법을 가르치는 곳, 그리고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달란트를 개발하고 키우는 곳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시간이다.
남호수 동서대학교 교학부총장 스마트모빌리티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