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서울과 울산, 시민 창작자를 키우는 두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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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서울과 울산, 시민 창작자를 키우는 두 도시 이야기
  • 경상일보
  • 승인 202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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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문학은 소수 작가만의 것이 아니다. 글을 쓰며 자기 삶을 돌아보는 사람들 속에서 한 도시의 문화적 기운이 자란다. 필자는 정신과의사로, 또 수필가로 살아오며 다양한 도시의 문학공간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특히 서울과 울산의 문화정책을 비교할 때,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한다. 그 차이 속에서 울산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서울은 전국에서 가장 방대한 문화 인프라를 갖춘 도시다. 서울 문학관과 서울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생활 문학 동호회 지원, 창작 워크숍, 낭독회, 작가와의 만남이 연중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성북동에서 글쓰기를 좋아하던 한 50대 여성은 구청에서 연 문학창작 교실에 참여한 뒤 수필 공모전에 도전해 입상했고, 그 경험으로 지역 신문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시민 한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가 겹겹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울산은 서울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민 창작자를 키운다. 규모는 작지만 밀착되어 있다. 울산시는 지역 문인협회와 연계해 생활 문학 동호회를 지원하고, 동호회들은 매년 수필집과 시집을 발표하며 새로운 회원을 확충한다.

나는 십수 년 전, ‘울산수필’이라는 수필동아리에 가입했다. 정신과 의사로서 온종일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정신적 고통과 마주하다 보면 나도 내 안의 감정을 풀어낼 창이 필요했다. 첫 모임 날, 모인 사람들은 나처럼 직업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달랐다. 하지만 놀라웠다. 누구나 마음속엔 저마다의 이야기가, 오래 묵힌 문장이 있다는 것에. 함께 글을 쓰고, 읽고, 웃으며 울었다. 매년 회원들과 함께 수필집을 출간하며 퇴고의 고통과 기쁨을 겪어 보았다. 미숙한 글임에도 의사 수필 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울산의 수필동아리가 연합하여 문학축제를 열어보는 소중한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울산에도 아쉬움은 있다.

첫째, 창작자에게 연속적인 성장 경로가 부족하다. 문학동아리에서 글을 발표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발판이 많지 않다. 서울은 동아리→공모전→지역문학상→전문 창작센터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촘촘하다. 울산도 지역문학상이나 출판지원 공모를 확대해 시민이 전문작가로 도약할 사다리를 더 만들어 주면 좋겠다.

둘째, 디지털 플랫폼과의 연결이 약하다. 지역 문학이 오프라인 행사에 머물면 독자가 한정된다. 울산시가 시와 수필, 지역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온라인 문학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시민 창작물을 SNS와 연계해 홍보한다면 더 많은 독자가 만날 수 있다. 울산의 문인들 모임인 울산 문인협회가 그 아카이브가 되도록 시 당국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문학 동호회에 대한 지원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 매년 작품집을 내기 위해 계획서를 제출하면 시에서 일부 지원을 해주지만, 그 결과물은 1년에 겨우 한 권이 나올 정도다. 얼마 전에는 시민을 대상으로 수필·시·소설 동호회들이 연대해 문학축제를 열었는데, 시민들의 호응이 뜨거웠음에도 예산 부족으로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

넷째, 문학의 각 장르를 품고 시민들의 보금자리가 될 문학관이 절실하다. 12년 전 언양에 세워진 오영수 문학관이 문학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지만, 광역시 울산에 문학관이 단 한 곳뿐이라는 현실은 아쉽다. 최근 울산 문인협회를 중심으로 문인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울산 문학관’ 건립을 두고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다. 서울시 곳곳의 문학관들이 시민의 문학적 토양이 되듯, 울산도 이제 시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

문화정책은 결국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서울은 규모와 다양성으로, 울산은 밀착과 깊이로 각각의 방식으로 시민 창작자를 키운다. 울산이 가진 장점은 절대 작지 않다. 서로를 격려하며 글을 쓰는 시민들의 숨결이 모여 울산의 문학 지형을 단단히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그 흐름에 작은 사다리와 넓은 디지털 창을 더한다면, 울산은 규모를 뛰어넘어 창작자 친화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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