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보존과 안전 사이, 옛 삼호교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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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보존과 안전 사이, 옛 삼호교의 딜레마
  • 주하연 기자
  • 승인 202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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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하연 사회문화부 기자

울산 태화강 위에 놓인 옛 삼호교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 구조적으로는 교각 기초에 균열이 생겼고 상판 일부가 내려앉은 것이지만, 상징적으로는 우리 행정의 우선순위와 문화재 제도의 현주소가 함께 내려앉은 셈이다. 무너진 교량 앞에서 그 누구도 손을 쓰지 못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구는 지난달 31일부터 옛 삼호교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에 착수했다. 침하 정도와 구조물 안정성, 보수 가능성 등을 평가하는 작업으로, 오는 9월 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국가유산청은 정밀안전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옛 삼호교의 철거 또는 보존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해 다소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문제는 그 사이 또 다른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상판이 2m가량 내려앉았고, 세굴 현상이 심해진 교각 하부에는 충격이 계속 쌓이고 있다.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다시 덮칠 경우, 이를 버텨낼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위험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중구가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사실상 없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삼호교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자체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이다. 침하가 확인됐음에도 긴급보수조차 현상변경으로 간주돼 국가유산청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임에도 문화재 행정은 절차를 앞세운다.

옛 삼호교의 보존 여부를 결정할 문화재위원회는 통상적으로 보수적 판단을 내리는 기구다. ‘가능한 한 보존’이라는 기조가 자리 잡고 있고, 이는 문화재의 본질적 가치를 중시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옛 삼호교는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손상이 진행 중이며, 보수를 시도하더라도 원형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 형태가 바뀌고 재료가 교체된다면, 문화재로서의 정체성과 상징성 또한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옛 삼호교가 지난 2004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당시, 중구는 내구성 문제를 이유로 등록에 반대했지만, 문화재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00년 된 철근콘크리트 교량의 구조적 수명에 대한 고민보다는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상징성이 우선된 결과였다.

문화재는 보존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현실 속에서 안전하게 관리돼야 할 구조물이기도 하다. 과거의 흔적이 현재의 위협이 되는 순간, 그 경계는 재조정돼야 한다. 무작정 지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지키기 위해서는 관리할 수 있어야 하고, 위험에는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문화재 행정은 시민 안전을 외면한 형식주의로 전락할 뿐이다.

주하연 사회문화부 기자 joohy@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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