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태의 인생수업(6)]게으른 내가 매일 글을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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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태의 인생수업(6)]게으른 내가 매일 글을 쓰는 이유
  • 경상일보
  • 승인 2025.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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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나는 이공계 출신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문학적 감성이 특별히 풍부한 편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매주 월요일, ‘정안태의 인생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벌써 3년째 경상일보에 안전칼럼을 기고하고 있고, 하루 한 편 이상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글을 참 잘 쓰시네요. 대단하세요.” 하지만 나는 대단해서 쓰는 게 아니다. 사실 나는 본래 게으른 사람이다. 어쩌면 태생적으로. 그래서 나를 붙드는 장치를 만들었다. 신문과의 약속, 마감이라는 책임감. 그 무거운 시간의 언약이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다. 꼭 글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주 원고를 짜낸다. 끝없는 자유보다, 마감 있는 삶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내게 블로그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게으름을 통제하는 장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다잡기 위한 글이다. 퇴직 후의 시간은 자유롭지만, 그만큼 쉽게 흐트러질 수 있다. 블로그는 그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두는 그물이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압축해 기록하면, 그것이 곧 시간과 삶의 증거가 된다.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읽은 뒤에는 생각을 정리해 기록한다. 글쓰기가 독서를 부르고, 독서가 다시 글쓰기로 이어진다. 그렇게 하루의 상당 부분을 독서와 글쓰기에 쏟는다. 어느새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글감을 찾기 위한 탐색이자 삶을 채우는 공부가 되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떤 문장은 나를 다독이고, 또 어떤 문장은 조용히 묻는다. “지금 너는 제대로 살고 있느냐.” 이 물음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경구와 닮아 있다. 기록은 그렇게 나를 멈추게 하고, 되돌아보게 한다. 글쓰기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는 철학적 행위다.

나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간은 멈추지도,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시간은 과거와 미래가 아닌 오직 지금, 이 순간 속에서만 실존한다. 그래서 나도 하루하루를 더 쓸모 있게 쓰려 애쓴다.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우리는 대개 시간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어느 달인지조차 헛갈릴 때가 있다. 하지만 기록은 나를 현재로 끌어당긴다. 블로그에 쌓인 글을 되짚어볼 때 비로소 지난 시간을 또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그 글들이 내게 속삭인다. “이것이 너의 시간이었다.” 그제야 나는 안도한다. 의미 없이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지탱한다.

나는 여전히 게으른 사람이다. 하지만 마감은 나를 걷게 하고, 기록은 나를 살게 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활동적인 삶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다. 그래서 오늘도 한 문장을 꺼낸다. 하루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기록들이 내 삶을 증명해주기를 바라며.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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