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의 자랑이자 인류의 보물인 반구대 암각화가 물속에 잠긴지 벌써 3주가 넘었다. 지난 7월19일 침수된 이후 단 한 번도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지 불과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세계의 주목을 받는 시기에 정작 주인공은 수면 아래 갇혀버린 셈이다.
이달 초 잠시 수위가 낮아져 일부 모습을 드러냈지만, 지난 주말 내린 비로 다시 감춰졌다. 10일 오후 5시 기준 사연댐 수위는 57m. 이 정도면 반구대 암각화는 수심 속에 완전히 잠긴 상태다. 사연댐 수위가 53m에 이르면 침수가 시작되고, 57m를 넘으면 전면이 물속에 들어간다. 침수 소식에도 불구하고 여름휴가와 방학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반구천을 찾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안내판과 사진뿐이다. 오랜 기다림과 기대를 안고 온 방문객들은 아쉬움과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천전리 암각화와 암각화박물관을 둘러보며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있지만, 세계유산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던 바람은 채워지기 어렵다.
문제는 앞으로다. 추가 유입량이 없더라도 수위가 자연적으로 내려가 암각화가 완전히 드러나기까지는 최소 한달이 걸린다. 사연댐은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는 ‘자연 월류형’ 구조로, 수위 조절 능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연댐 여수로에 3개의 수문을 설치하는 사업이 이미 시작됐다. 완공되면 평상시에도 수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할 수 있어 침수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다. 완공까지는 3년이 더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댐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울산의 식수 공급이라는 현실적 한계가 가로막고 있다.
더욱이 내년에는 인근 부산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가 열린다. 세계 각국의 관계자와 문화유산에 관심 있는 관광객들이 대거 방한할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 역시 유일한 세계유산인 반구천의 암각화를 앞세워 관광객 유치에 나설 좋은 기회다. 그러나 회의가 열리는 시기에도 암각화가 물속에 잠겨 있다면 어떨까. ‘세계의 보물’을 품고 있지만, 보여줄 수 없는 도시. 그 허탈함과 손실은 누구의 책임일까.
지금 필요한 것은 장기 대책뿐 아니라 당장 실효성 있는 임시방안이다. 예를 들어 실시간 수위와 노출 상태를 안내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방문객들이 헛걸음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온라인을 통한 영상 관람이나 증강현실(AR) 콘텐츠로 ‘가상 관람’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당장은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다른 경험으로 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반구대 암각화는 국가유산이다. 울산시와 지역사회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울산시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이미 식수 일부를 양보하고 있다. 세계유산 보존은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품격과 직결된다. 정부가 관심을 갖고 실행 의지를 보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물속에 잠긴 인류의 걸작을 세상 앞에 다시 드러내 주길 바란다.
석현주 사회문화부 차장 hyunju02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