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화정공원을 서진문공원으로
상태바
[특별기고]화정공원을 서진문공원으로
  • 경상일보
  • 승인 2025.08.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100여년 전 우리 선대가 목숨을 걸고 일제와 싸워서 지켜낸 우리나라는 이제 K-조선, K-팝, K-양심 등으로 상징되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꿇리지 않는, 당당한 국제적 위상을 다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높아질수록, 우리가 100여년 전 선조들의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울산 동구에도 일제 강점기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과 가족의 편안함은 물론, 목숨마저도 헌신적으로 버렸던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있다. 그 가운데 동구에서는 유일하게 독립운동 국가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고 서진문 선생의 묘소가 동구 화정공원에 마련되어 있다. 서진문 선생의 묘소는 동구 지역에서도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곳이어서 동구 향토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자라나는 어린이와 주민들에게 동구의 항일운동 역사와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을 널리 알리고 동구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화정공원의 명칭을 서진문 공원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한다. 서진문 선생은 사촌인 고 성세빈 선생이 일제 강점기 때 운영했던 민족 사립 보성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어린 학생들의 민족정신을 높이는 데 헌신했다. 특히 서진문 선생은 당시 교육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던 여성을 위한 야학을 보성학교에서 운영해 동구 지역 여성들의 지식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일본으로 여러 차례 건너가, 일본에서 최하층 노동을 담당하던 재일 한국인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며 항일운동을 했다.

서진문 선생이 교사로 있었던 보성학교의 학생들은 어린 나이에도 항일운동 모임인 ‘적호소년단’을 조직해 일제에 저항하는 활동을 했다. 어릴 적 보성학교에서 공부했던 동구 출신 교육자 고 김병희 박사의 회고록에 따르면, 학생들은 ‘국어독본’이라고 쓰인 일본어 교과서를 새로 받으면, 표지의 ‘國’자를 일제히 칼로 긁어내 ‘日’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일본어는 우리 국어가 아니라는 강력한 민족정신에서 발현된 행동이었다.

이처럼, 어린 학생들이 일제의 회유와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민족정신을 지키며 성장했던 배경에는 서진문 선생을 비롯한 보성학교 교사들이 큰 역할을 했다.

서진문 선생은 일제의 감시 속에서 수시로 체포되어 곤욕을 치렀는데, 1924년에는 보성학교 교실에 갑자기 왜경이 들이닥쳐 서진문 선생을 끌고 가는 일이 있었다. 당시 7살이었던 김병희 박사는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서진문 선생의 뒤를 따라, 학우들과 함께 울면서 일산진 앞바다까지 쫓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4년이 지난 1928년에는 어른들에게서 왜경이 서진문 선생을 동경의 한 형무소로 끌고 가서 전기고문으로 죽였다는 말을 듣고 또다시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서진문 선생은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에 왜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일제는 서진문 선생의 임종이 다가오자 급히 석방했는데, 서진문 선생은 딸의 이름을 부른 뒤 꺼져가는 목소리로 ‘조선 독립 만세’라는 말을 남기고 28살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서진문 선생의 유해는 고향인 동구에서 면민장(面民葬)으로 치러졌는데, 그의 장례식에는 애도 인파가 몰려 화정공원의 묘소까지 장례 행렬이 10리나 되었다. 성세빈 선생은 ‘고 서진문의 묘, 1928년 11월. 동지들이 세움(故 徐鎭文君之墓 一九二八年 十一月 日 同志 立)’이라는 비문을 손수 써서 돌에 새겨 서진문 선생의 묘소 옆에 세웠다.

외동딸인 고 서정자 여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아버지(서진문)께서는 일산진 마을 동편 동대산 소나무 숲은 바라보면서 ‘바람이 쉬지 않고 항상 불고 있을 때까지는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줄 알고, 바람이 자면 내가 죽은 줄 아시오’ 하시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라고 회고했다. 부엌일 하는 아내가 볼 수 있게 꽃나무를 옮겨 심을 정도로 가족을 극진히 사랑했던 서진문 선생이 어떤 심정으로 그 말을 했을지, 그 마음을 헤아려보자니 나도 가슴이 먹먹하다.

우리는 서진문 선생의 나라 사랑 정신을 더 널리, 더 오래 기억해야 한다. 그 시작은 선생의 묘소가 있는 화정공원의 이름을 서진문 공원으로 바꾸어 그의 헌신적인 삶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아직까지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고 성세빈 교장 등 동구지역 항일운동가들의 업적을 재평가해 그분들이 헌신에 걸맞는 예우를 받도록 해야 한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의 小공원 산책하기](6)도시바람길숲-새이골공원
  • [현장사진]울산 태화교 인근 둔치 침수…호우경보 속 도심 곳곳 피해 속출
  • 폭우에 단수까지…서울주 3만5천여가구 고통
  • [울산의 小공원 산책하기](4)공원이 품은 정신-해오름공원
  • 태화강 2년만에 홍수특보…반천에선 車 51대 침수
  • [정안태의 인생수업(4)]이혼숙려캠프, 관계의 민낯 비추는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