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내의 초록지문(20)]이 도시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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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내의 초록지문(20)]이 도시가 사는 법
  • 경상일보
  • 승인 2025.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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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아이들이 어릴 때 읽던 생태도서 중에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로 표현한 문장이 있었다. 책 제목도 줄거리도 잊었지만, 표현은 오래 각인되었다. 허파라는 말에는 산소 생산을 넘어선 의미가 있다. 탄소 저장과 기후 완충, 생태계 유지를 통해 생물 다양성 보전의 기능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센트럴파크는 맨해튼의 허파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여름의 가장자리에 앉아 눈을 감으면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강렬한 빛살이 내려앉고 바람은 살갗을 스친다. 기다렸다는 듯 자연이 말을 건다.

19세기 중반, 뉴욕은 산업화와 이민자 유입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거 환경의 악화, 위생과 소음은 도시민의 삶을 힘들게 했다. 1853년 뉴욕주 의회는 센트럴파크 조성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고 공모를 통해 옴스테드와 복스의 설계를 선택했다. 옴스테드는 ‘도시공원’이라는 개념을 만든 인물이다. 그는 자연이 병든 도시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공원을 아름다운 장식이 아니라 정신적 회복과 사회적 평등을 위한 공간으로 여겼다.

센트럴파크는 세계 최초의 계획된 도시공원이다. 녹지 확보를 넘어 사회적 기능과 미학적 목적을 담은 조경설계가 시작된 곳이다. 곡선의 산책로, 완만한 구릉과 수공간, 시야를 가리기도, 펼치기도 하며 아름다움에 실용성과 공공의 목적을 더했다. 덕분에 조경은 건축이나 토목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된 영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 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센트럴파크의 한낮.
▲ 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센트럴파크의 한낮.

해바라기하는 사람들, 분수대 근처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관광객을 태운 마차. 공원의 호흡은 제각각이다. 페스티벌이 시작되려는지 가까이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나뭇잎이 리듬을 탄다. 잠시 멈추거나 한번 바라보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가거나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계절을 느끼고, 경험하고, 바라본다.

무더웠던 하루를 긴 숨으로 뱉는다. 신선한 초록을 마시며 도시도 나도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공원을 빠져나오니 맨해튼 헨지 시간이다. 해가 길게 떨어진다. 머지않아 여름도 지나가겠지.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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