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바깥은 여름, 그 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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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바깥은 여름, 그 틈을 찾아서
  • 경상일보
  • 승인 2025.08.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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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훈화 서양화가

“이 사진들도 예술이 돼야 하는 거 아니야?” 친구가 함께 길을 걷다가 벽에 붙은 사진을 보고 물었다. 시대별로 학생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운동회와 같은 교실 밖의 풍경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교복, 교련복, 체육복을 입고 있었지만, 학교를 벗어나며 그 안에서 즐거움을 소화하는 듯했다. 어깨동무하며 환하게 웃는 두 친구의 모습. 그리운 시절이 거기에 있었다.

며칠 전 울산시립미술관에서 본 서도호의 전시가 떠올랐다. 설치 작품 ‘유니폼/들:자화상/들:나의 39년’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구성했던 교복, 교련복, 군복 등을 일렬로 배치해 이어 붙였다. 예술가들은 종종 기억의 저장소로 ‘옷’을 활용한다. 서도호 작가의 작품이 특별한 것은 우선 ‘나’만이 아닌 ‘우리’의 기억으로 확장했다는 점에 있다. ‘사람의 몸을 벗어낸’ 유니폼/들을 통해서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코드’를 옷의 형식 속에서 끌어냈고, 미술관에 전시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구조를 다시 바라보게 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 매일 교복을 입었고, 옷의 길이와 폭은 규격화돼 있었다. 그 이전세대에는 교련복(군사 훈련복)이 있었다. 남자들은 때가 되면 군복을, 이후에는 예비군복을 입어야 했다. 복장의 차례는 국가가 정해놓은 삶의 단계였다. 일탈은 처벌이 뒤따랐다. 전쟁으로 남북이 분단된 나라만이 가지는 사회적, 정치적 특수성 때문이었다. 국가는 우리에게 단지 ‘벽 속에 또 하나의 벽돌’로만 존재하기를 강요했다. 유니폼은 우리의 몸에 이런 사회적 질서와 감각을 각인시켰다. 즉 옷이 우리의 몸과 삶을 규정짓는 장치였던 셈이다. 이 작품은 질문한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익숙한 이 사회의 옷을 입은 당신은 스스로 삶을 선택한 적이 있는가?”

그런데 유니폼 안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어디 있는 걸까? 학교 담벼락 사진들 속에 있었다. 바위에 서서 모자는 삐딱하게 쓰고 삐딱한 모습으로 어깨동무 하고 있는 두 남학생. 교련복의 바지를 돌돌 말아 물속에 들어가 활짝 웃는 여학생들. 위에는 교복, 아래는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 질서의 강제 속에서 조그만 균열을 내는 몸짓들, 규율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웃음들. 그들에게 코드화된 일상은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조금이라도 ‘익숙함’을 밀어내려는 몸의 충동들. 그 충돌이 사진들 속에 남아 있었다.

학교 담의 사진으로 내가 작품을 만든다면, 옷이 아니라 그들의 몸짓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서도호의 작품이 과거의 구조를 정면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라면, 나는 그 구조 안에서 탈주하는 작은 흔들림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은 정제된 메시지가 아니라 삶의 감각이 들썩이는 바로 그 지점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코드의 탈주’. 무더운 여름, 시원한 미술관에서 나만의 상상이 시작된 이유이다.

장훈화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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