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문화의 물결은 더 이상 서쪽에서 동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이제 그것은 한반도에서 일어나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최근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3’ ‘모범택시’ 그리고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글로벌 순위를 휩쓴 일은 단순한 흥행 뉴스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문화가 ‘유행’을 넘어 ‘현상’이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K콘텐츠의 폭발적 확산에는 세 가지 축이 맞물려 있다. 창의성, 기술, 그리고 언어.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힘은 언어, 곧 한글이다. 우리는 흔히 무대 위의 화려한 퍼포먼스나, 드라마 속 치밀한 서사와 감각적인 연출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가 숨 쉬고, 세계와 단숨에 연결될 수 있는 뿌리에는 한글이 있다.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을 조합하는 과학적 구조 덕분에 디지털과 모바일 환경에 가장 적합하다. 몇 번의 터치면 문장이 완성되고, 표기와 발음이 거의 일치해 의사 전달이 정확하다. 이 간결함과 정밀함은 디지털 시대의 핵심 가치인 ‘압축된 소통’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트위터의 짧은 문장, 메신저의 실시간 대화, 유튜브 댓글 속에서 한글은 가장 빠르고 직관적인 언어로 기능한다.
속도의 시대에 언어의 효율성은 곧 힘이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은 한 곡, 한 장면, 한 안무를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송한다. 팬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커버댄스를 추고, 리액션 영상을 만들고, 가사를 번역하며 공동 창작자가 된다. 국경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니고,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대륙 반대편의 새벽에도, 같은 음악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체가 형성된다.
한글의 힘은 편리함에 머물지 않는다. 사각형 블록 형태의 글자는 그 자체로 시각 예술이다. 뮤직비디오 속 네온사인, 앨범 재킷, 패션 로고, 거리의 간판에서 한글은 독창적인 디자인 언어로 살아난다. 해외 팬들은 가사를 한글로 따라 쓰고, 그 글자를 티셔츠나 포스터에 새겨 문화적 소속감을 표현한다. 언어가 예술이 되고, 예술이 다시 언어를 전파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인문학의 시선으로 볼 때, K콘텐츠와 한글의 결합은 창작자와 소비자, 언어와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진 디지털 문명의 상징이다. 문화예술학적으로는, 창의성이 국가 브랜드이자 문화 권력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정치학’이다. 스마트폰이 만든 초압축 소통 구조 속에서 한글은 가장 빠르고 아름다운 언어로 자리 잡았고, K문화는 그 언어 위에서 세계를 향해 노래하고 이야기한다.
결국 K팝과 한글은 디지털 인류의 쌍두마차다. 하나는 창의성으로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는 언어와 예술로 마음을 붙잡는다. 그 힘은 국경을 넘어, 세대를 넘어, 시대를 넘어 흐른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 창제한 글자가, 이제는 세계를 향해 문화를 전하는 가장 세련된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유행이 아니라 진화다. 앞으로도 K문화는 한글 위에서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세계의 언어와 감정을 다시 쓰게 될 것이다.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