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국가 운명 가를 부·울·경 해양AX 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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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칼럼]국가 운명 가를 부·울·경 해양AX 벨트
  • 경상일보
  • 승인 202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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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실 UNIST 연구부총장

한국이 ‘해양강국’을 꿈꾼다면 진원지가 어디일까? 한·미 관세협상 타결 과정에서 전략 카드로 활용된 것은 조선업이다. 여세를 몰아 부산과 울산, 경남이 손잡고 인공지능(AI) 기반 해양벨트(이하 해양AX 벨트)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미국과 중국이 지정학적으로 충돌하는 지금, 해양이 경제안보 관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해양국가로 세계 패권을 거머쥐었다. 이 뒤에는 한 전략가가 있었다. 1890년 ‘해양 패권론(sea power)’을 들고나온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Alfred Thayer Mahan)이다.

세계 지도를 보면 미국은 광대한 태평양과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을 바라보고 있다. 지정학적 방어 측면에서 보면 유럽과 아시아에서 위협적인 국가가 등장해도 해양이라는 버퍼 존(buffer zone)을 가진 국가다. 공세 측면에서 보면 유럽과 아시아를 정치·경제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넘나들어야 하는 국가다. 지정학적 특징을 간파한 머핸이 떠올렸을 국가 전략의 키워드는 자명하다. 바다를 장악할 해군력(함정과 병참보급기지 등)과 무역을 할 수 있는 상선(조선업, 항만, 선원 등)이다. 그는 해군과 상선을 공동 운명체로 봤다. ‘해양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머핸의 가설은 이렇게 나왔다.

해양국가로 패권을 잡은 미국이지만, 조선업은 지금 쇠퇴일로다. 국가 경제안보의 최대 취약점이다. 한국은 한·미 관세협상에서 여기에 착안해 조선업 협력을 전략적 카드로 내밀었고, 바로 먹혔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 한·미 관세협상을 보는 중국의 사고회로다. “한국의 기술력을 미국에 넘기는 위험한 거래다” “한·중 경제 파트너십이 위협받을 것이다.” 중국이 민감하게 나오는 이유는 그들 역시 머핸의 가설대로 해양 패권을 노리기 때문이다. 해군력 강화, 대만과의 양안 통일 추구, 지배해역 확대 등이 이를 말해준다. 과거 대륙국가로 서구 열강의 침략을 당한 수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바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집념이다.

미국도 중국도 물러설 수 없는 해양 패권 경쟁이다. 머핸도 그랬지만, 어쩌면 도널도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 황색인종이 백인의 우위성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공포감, 이른바 ‘황화론(Yellow Peril)’이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조선업을 레버러지로 ‘전략적 자율성’과 함께 ‘전략적 불가결성’까지 노려볼 만한 공간을 확보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이 탐낼 만한 새로운 전략적 자산을 계속 창출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해양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강한 해군력과 더불어 강한 조선업을 추구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이 중국과의 경쟁에 대응하고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조선업에서 나아가 해운과 항만 등을 포괄하는 해양강국으로 자강(自强)할 수 있는 국가 전략이 절실하다. 앞으로 북극항로 시대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부·울·경 해양AX 벨트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중앙정부가 해양수산부, 해운회사, 해양 공공기관 등을 부산으로 집결시키겠다고 하지만, 그 조치가 곧 해양강국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조선, 해운, 항만에 AI, 모빌리티, 에너지, 로봇, 그리고 여기에 금융까지 더한 해양AX 벨트라는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혁신생태계 창출은 부산만으로 안 된다. 부·울·경의 지자체, 산업계, 대학이 ‘지·산·학 일체’로 가면 한번 해볼 만하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및 경제 부총리가 4대 과기원 총장과의 면담에서 소속 초광역권별로 AI 기반 지역산업 혁신과 AI 인재양성의 플랫폼이 돼달라고 주문했다. 동남권의 UNIST는 AI대학원을 중심으로 초거대 산업제조 AI R&D에 착수했다. 해양AX는 핵심 테마의 하나다. 정부가 과기원에 AI 단과대학 설립을 추진하는 경우에도 해양AX는 UNIST의 특화분야로 들어갈 것이다. 부·울·경 해양AX 벨트가 성공하면 국가 운명이 달린 프로젝트를 지역이 주도하는, 한국 산업정책 역사에 남을 사례가 될 것이다. 동남권 지역혁신시스템(RIS)이 국가혁신시스템(NIS)을 바꿨다고 말이다.

안현실 UNIST 연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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