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복지’를 말하면 많은 이들이 이렇게 되묻는다. “사람복지도 안 되는데, 동물까지 챙긴다구요?” 맞는 말이다. 사람 복지의 빈틈은 여전히 크다. 도움을 받지 못해 고립된 이웃도 많다. 그러나 동물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곧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지난 7월, 경기도 파주의 한 돼지 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했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에게는 무해하지만, 돼지에게는 치명적이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 발병이 확인되면 농장 전체는 물론 발생 농장 반경 10km 이내의 모든 돼지 농장이 살처분 대상이 된다. 피해는 농가를 넘어 지역 경제로, 더 나아가 소비자의 식탁으로, 오염된 땅과 물로 인한 환경문제로 번진다. 한 농장의 위기가 순식간에 사회 전체의 위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원헬스(One Health)’다. 사람-동물-환경은 하나의 고리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나머지도 흔들린다. 좁은 사육장, 과도한 밀도, 항생제 남용은 전염병에 있어서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동물복지는 감성의 문제가 아니다. 돼지는 본래 하루 수 ㎞를 돌아다니며 흙을 파헤치고, 코로 냄새를 맡아 먹이를 찾는다. 무리와 함께 생활하며 교감하고, 더운 날에는 진흙탕에서 목욕해 체온을 식힌다. 이런 본능적 행동이 차단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면역력은 떨어진다. 반대로, 넓은 공간과 흙바닥, 놀잇감과 진흙탕을 제공하면 질병이 줄고 항생제 사용량도 감소한다. 이는 곧 항생제 내성균 확산을 막아 사람의 건강까지 지키는 예방책이다. 환경에도 이롭다. 악취와 분뇨 오염, 온실가스 배출이 줄고, 농업은 지속 가능성을 얻는다.
넓은 공간, 깨끗한 물과 먹이, 스트레스 없는 환경은 질병을 줄인다. 항생제 사용량이 줄고, 항생제 내성균 위험도 낮아진다. 환경에도 이롭다. 분뇨 오염과 온실가스 배출이 줄고, 농업은 지속 가능성을 얻는다. 이는 예방의학이자 환경정책이며, 장기적으로는 사람 복지를 강화하는 기초다. 그러나 우리나라 돼지 동물복지 인증농장은 전체 농장의 0.3%에 불과한 27곳이다. 소비자는 가격을 중심으로 소비하고, 생산자는 투입 대비 생산량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이 결정에는 돼지도 사람도 환경도 없다.
이러한 구조 전환의 지렛대가 공공급식이다. 학교, 어린이집, 요양원, 공공기관 식당이 동물복지 인증 축산물을 사용하면 안정적인 수요가 생긴다. 농가는 안심하고 전환에 투자한다. 아이와 어르신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일상에서 접한다. 시민건강과 축산 생태계를 함께 지킬 수 있는 길이다. 필자는 울산이 전국 최초로 공공급식에 동물복지 축산물을 도입하기를 제안해 본다. 사람복지와 동물복지는 결코 대립하는 선택이 아니다. 같은 길을 걷는 두 축이다. 동물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며, 환경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사람복지가 우선이라면, 동물복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민경 삶과그린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