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전 음악과 운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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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고전 음악과 운명론
  • 경상일보
  • 승인 2025.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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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고전 음악은 언제 들어도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울림을 전해주는 예술이다. ‘운명’이라는 주제는 수많은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운명에 대한 작품은 철학적 의문과 사유를 담아내어 사람들의 감동을 훔친다. 운명에 순응하고, 때로는 거부하며,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희망과 절망은 고전 음악에서 자주 강렬하게 표현된다. 운명과 관련된 대표작을 살펴보며, 작품에서 인간과 운명 사이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탐구해 보고자 한다.

첫번째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운명을 극적으로 나타낸 작곡가이다. 교향곡 5번, 일명 ‘운명 교향곡’은 운명을 중심으로 한 고전 음악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작품의 첫 악장은 강렬한 네 개의 음으로 시작되는데,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하였다. 그는 청력을 잃어가는 고통에서도 창작을 이어갔다. 운명 교향곡은 개인적인 투쟁의 기록이자 동시에 불가피한 운명의 극복을 상징한다. 첫번째 악장의 강렬한 리듬은 생의 냉혹함을 드러내고 있지만 곡이 진행되면서 점차 밝아지고 승리를 향해 나아간다. 이것은 삶의 무게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담고 있다. 작품은 운명과의 만남에서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음악적 선언으로 깊은 감동을 자극한다.

두번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운명을 신앙과 연결하여 표현한 음악가이다. ‘마태 수난곡’은 예수의 고난과 희생을 중심으로, 인간의 고통과 구원의 관계를 탐구한다. 바흐는 운명을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숙명으로 그리지 않았다. 대신 신의 섭리 안에서 운명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태 수난곡’은 신약성서 마태 복음서를 기초로 하였다. 그는 모든 복음서에 수난곡을 남겼다고 여겨진다. 현재 전하는 것은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이 있다. 작품에서 그는 성경 이야기를 음악으로 나타내는 것을 넘어, 청중들이 삶에서 운명과 신앙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운명에 대한 신앙적 철학을 제시하며 인간의 괴로움과 신성한 구원을 조명하고 있다.

세번째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는 운명의 비극적인 측면을 표현한 거장이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 6번 ‘비창 교향곡’은 인간이 세상에서 느끼는 절망과 고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선율이다. 작품은 자신의 내면적 아픔과 삶의 불확실성을 고백하듯 작곡한 것으로, 불행한 생의 기운을 음악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첫 악장에서부터 마지막 악장까지 감정의 소용돌이로 운명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마지막 악장은 어둡고 처연하게 끝난다. 이것은 고전 교향곡에서 드문 형식으로 그가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강렬하게 내포하고 있다. 작품은 슬프고 우울한 생이지만, 감정과 내면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번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Requim(레퀴엠, 안식)’은 진혼곡으로 죽음을 논제로 한 작품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작곡한 미완성작이다. 죽음이라는 운명적 결말을 앞둔 인간의 감정을 담고 있다. 레퀴엠은 종교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영원한 평화에 대한 갈망이 녹아 있다. 그는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았다. 죽음은 영원한 삶으로 넘어가는 관문으로 운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상으로 고전 음악에서도 보았듯이 모든 예술에서 운명은 간단한 주제가 아니다.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물음과 맞닿아 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노래했고,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운명을 신성한 섭리 속에서 재해석했다. 차이콥스키는 비창 교향곡으로 운명의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했으며,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죽음이라는 궁극적 운명에 대해 심오한 성찰을 제안했다. 음악은 철학적 사유의 도구이기도 하다. “운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음악은 이 모든 것을 공감하고 통찰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운명은 불가피하다. 누구나 초행길이다. 정답은 없는 것이 정답이다. 삶과 죽음에서 동행하는 위대한 음률은 운명에 위안을 주는 음성이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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