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 자전거를 탈지 걸을지 따위의 사소한 선택 앞에서도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라는 조급함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느긋함이 부딪쳤다. 똑같은 상황, 상반된 격언들. 그 사이에서 어쩐지 갈증이 났다. 갈림길이 빈번해지며 정답 혹은 진리란 사실 없을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속담이나 격언은 결과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장난이 아닐지. 그때 느꼈다. 누군가의 손을 놓아버린 듯한 외로움, 표지판 없는 외딴 길에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손님이 찾아왔다. 반복되는 선택에서 자꾸만 오답이 나올 때 어김없이 나타나 아껴둔 차와 과자를 홀랑 받아마시며 눌러앉는 손님. 충청도식 미적지근한 말투로 돌려 말해도, 교토식 화법으로 에둘러 내보내려 해도 오히려 자리를 파고든다. 권태라는 이름의 불청객은 사람에 따라 방문 시기와 모습이 다르다. 이를테면 3년마다 찾아온다는 ‘인생 노잼’ 시기, 달에 한 번꼴로 예민해진 피부에 거울을 멀리하는 ‘얼태기’ 혹은 한 사람분의 사랑으로 둘이 버텨내는 권태기가 있다. 겉보기에 게으름의 형태로 나타나서 배부른 소리라며 혀로 끌끌 차이기도 하나, 겪는 사람으로선 외려 허할 뿐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의 시계추와 같다’라는 말에 의지해 반대편으로 추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면서.
5학년 2학기 국어 첫 장에는 ‘벽 부수기’라는 작품이 등장한다. 공감의 방법으로 마음의 벽을 허물어간다는 내용의 시를 아이들과 바꾸어 적어봤다. 먼저 부정적인 감정을 겪은 경험을 꺼내보며 각자의 벽을 떠올렸다. 안타깝게도 이날 수학 문제, 사회, 잔소리, 학업 스트레스의 벽이 끊기거나 잘려 나가고 부서졌다. 그 방법으로 아이들은 ‘문제를 다시 읽고 아는 것을 떠올리기’ 음료를 마시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화살을 10점 과녁에 정확히 맞추며 ‘자신감 가지기’라는 약을 밥에 비벼서 야무지게 먹었다. 친구의 벽과 깨트릴 무기에 아이들은 공감했다. 때로는 같은 감정을 지녔다는 사실 하나에 위로를 받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방학이 어느새 여름을 데려가고 있다. 지글지글 데워진 시멘트 위에서 길을 잃는다면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하고 부글부글 끓다 타버릴 것이다. 달궈진 감정이 지쳐 소진되는 시기는 다음 계절이 오듯 자연스레 온다. 혼자서는 힘에 부칠 때 탄성을 이용하는 게 필자의 벽 부수기 방법이다. 먼저 가로막힌 벽에 느끼는 한탄을 충분히 표현하고, 쏠린 신경을 전환할 사소한 무언가에 감탄하며 마지막으로 일상을 찾아 되돌아가려는 성질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처서를 막 지난 여름날, 잠자리가 낮게 나는 계곡물에 들어가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곱씹던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최선을 다해 즐거워져도 가을은 온다고요.’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슬퍼져도 가을은 옵니다. 온다고요.
배상아 복산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