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 지역의 가뭄이 한계 상황에 다다르고 있다.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 강릉시는 가정용 수도 계량기를 50% 차단하는 제한급수를 75%까지 확대할 계획을 밝혀 주민 불편이 장기화될 것을 예고했다.
지난 6개월 동안 강원도의 강수량은 평년의 절반 수준인 49%에 불과했고, 최근 한 달 강수량은 평년 대비 16% 남짓이었다. 강원도의 가뭄은 단순히 한 도시의 불편을 넘어 국가적인 물 관리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 되고 있다.
이번 여름 전국 곳곳에서는 시간당 100㎜를 넘는 극한호우가 열차례 이상 쏟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강원 동해안은 폭우가 빗겨갔다. 대기 상층의 흐름과 산악 지형의 영향으로 강수대가 동쪽으로 깊이 파고들지 못한 탓이다.
이는 최근 기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 즉 강우량은 국지적으로 집중되고 강수 편차는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특징과 맞닿아 있다. 한쪽에서는 홍수 피해로 몸살을 앓는 동안, 불과 수십 ㎞ 떨어진 다른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허덕이는 ‘기후 불균형’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의 가뭄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집중호우와 무강수 지역이 공존하는 신기후 패턴의 경고등이다.
이런 현상은 기후과학적으로도 설명된다. 지구 평균 기온이 1℃오르면 대기는 약 7% 더 많은 수증기를 품을 수 있다. 이는 폭우가 발달하기 좋은 연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대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이 늘어 토양의 증발이 가속화되고, 대지가 더 빨리 마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같은 기후 조건 속에서도 어떤 지역은 기록적 폭우를 맞고, 다른 지역은 더 깊은 가뭄에 빠지는 이중적 결과가 나타난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 기상현상은 단순히 ‘비가 많다·적다’의 문제가 아니라, ‘비가 쏠려 내린다·비껴간다’의 문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문제는 단지 생활용수 부족에 그치지 않는다. 가뭄은 농업과 축산업을 직격한다. 논밭이 타들어가면서 작황 부진이 이어지고, 가축 사육에도 막대한 차질이 생긴다. 물이 부족하면 사료 생산량도 줄어들고 사육 환경은 악화되어 결국 축산물 가격 급등으로 이어진다. 이는 식량 안보를 위협할 뿐 아니라, 농산물·축산물 가격 상승을 통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며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 같은 경제적 파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
기후변화가 만들어내는 가뭄은 더 이상 한 지역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와 사회 안정까지 흔드는 복합 위기다. 따라서 우리는 단기적 급수 대책을 넘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기후 적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역별 물 저장·재이용 인프라를 확충하고, 농축산업의 물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스마트 농업·순환형 축산 체계를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탄소중립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늘의 강릉은 내일의 전국이 될 수 있다. 가뭄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서 진행되는 ‘기후 2050’의 현실이다.
맹소영 기상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