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는 역사라는 긴 강물 위에 서 있다. 한 세기가 채 되지 않은 세월 동안 우리는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이제는 세계적인 위상을 가진 대한민국이 되었다. 그러나 그 역사의 뒤안길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 없는 영웅이 수없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필자가 가장 마음 속에 둔 인물은 바로 님 웨일즈 저서 <아리랑> 속 주인공 김산이다.
그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품었던 민족의 자화상이었다. 김산의 삶은 조국 광복과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의 결정체였다. 그는 식민지 청년으로 태어나서 고향을 떠나 중국 대륙을 누비며 사상과 혁명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냈다. 그러나 그 삶은 찬란한 승리보다 배신과 고통, 고독으로 가득찼다. 결국 그는 혁명의 이름으로 숙청 당해 역사 속에 묻혀야만 했다. 하지만 님 웨일즈의 식민지 조선 청년 김산에 대한 따듯한 시선은 <아리랑>으로 거듭 태어나 전 세계인에게 우리 민족의 눈물과 투혼을 전하고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김산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가 되찾은 광복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냐”고. 광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광복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분단의 장벽은 여전히 우리를 가로막고 있고 사회의 불평등과 갈등은 광복의 진정한 의미를 흐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산이 목숨을 걸고 꿈꾸었던 나라는 단순한 국권 회복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과 정의가 보장되는 나라가 아니었을까?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 강국이자 K로 시작되는 아이콘의 중심지며 성숙한 민주주의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 성취의 이면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들이 있다. 부의 불평등과 이념의 충돌, 세대 간의 갈등 그리고 공동체적 가치의 쇠퇴 등이다. 김산은 우리에게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라고,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주라고 말한다. 그것이 곧 광복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산의 삶을 통해 새로운 질문과 과제를 안고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광복과 자유,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우리 가슴 속에서 어떻게 울리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김산이 불렀던 아리랑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통곡이며 희망의 서시였다. 이제 이 아리랑은 분단을 넘어 평화와 공존 그리고 통일의 길을 향한 합창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름없는 영웅 김산이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병철 울산장애인재활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