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이훤의 ‘낭만실조’라는 작품에는 낭만이 사라져 허기를 느낄 때 상대가 웃는 모습을 보고 포만감에 숨 쉬지 못했다는 표현이 있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는 연인의 사랑을 낭만으로 잘 드러냈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 읽을수록 작품의 내용만큼이나 작가가 낭만에 대해 사색했다는 자체가 굉장한 낭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숨을 쉬지 못할 만큼의 포만감을 채워주는 낭만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국어사전에는 낭만을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라고 기재돼 있다.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어느 하나 쉬운 과정이 없는데, 현실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위험을 피하고자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결론을 예측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현실을 곱씹고 곱씹을 수밖에.
어느 소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에 따르면 ‘낭만’이라는 단어의 언급량은 2019년 2만건에서 2024년에 7만건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여수의 ‘낭만 포차 거리’,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 그리고 최근 KBS 다큐 3일 특별판에서 화재가 된 10년 전 안동역의 약속은 온 국민에게 ‘낭만 치사량 초과 스토리’로 언급될 만큼 ‘낭만’이라는 키워드가 요즘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낭만을 왜 찾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와 감성을 찾아 즐기며 디지털 기술과 감성을 융합해 살아가는 Z세대의 특성과 과거에는 물질적 소비가 주를 이뤘지만, 요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과 낭만을 만들어내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경험 중심 소비 성향으로의 전환인 것 같다.
교사가 되고 나서 느끼는 낭만 중 하나는 아이들의 10대 감성이다. 10대는 경험이 부족할 뿐 결코 생각이 부족한 시기는 아니기에 내가 경험하진 않았어도 그 아이에게 도움 될만한 경험을 제시하곤 한다. 경험이 때론 용기보다 겁을 주기도 하지만 눈앞이 어두컴컴할 때 구원이 되는 것 또한 경험이니 말이다.
아이들이 치열한 현실 속에서도 돌이켜보면 비교적 낭만이 가득했을 10대의 찬란한 순간들을 붙잡으며 살아가면 좋겠다. 그리고 한가지 꿈이 있다면 학생들이 오랜 시간 뒤에 10대를 떠올렸을 때 낭만의 한 장면 속에 기억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욕심일지언정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가오는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낭만이 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있어야 낭만이 따라오듯이 나를 돌보고 내 마음을 지키는 일이 곧 삶을 지켜내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하길 바라며.
김강현 울산온라인학교 보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