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구 태화강역 일대가 재정비된다. 기차에서 내려 정원의 향기를 맡고, 저녁에는 세계적 무대의 커튼이 오르는 도시를 준비 중이다.
울산시는 장기 비전 아래 구 삼산매립장에 3500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과 문화시설을 조성하고, 태화강역은 복합환승센터로 개발해 교통과 문화가 결합된 도심 허브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산업수도 울산’에 ‘정원·문화·관광’이라는 새 축을 더해 도시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다.
핵심은 태화강역 복합환승센터다. 철도·수소트램·도시철도를 빠르게 연결하는 환승 네트워크를 고도화하고, 역세권에 상업·문화·관광 기능을 결합해 ‘체류형 거점’으로 전환하는 것이 전략의 골자다. 역에서 내리면 곧 정원이고, 정원 끝에는 공연장이 있으며, 공연의 여운이 도심 상권으로 이어지는 동선, 이것이 울산이 설계한 ‘하루 시나리오’다.
공연장 확충 필요성은 분명하다. 현재 울산에서 대형 공연을 소화할 시설은 개관 30주년을 맞은 울산문화예술회관이 사실상 유일하다. 1500석 규모의 대공연장은 구조가 단순하고 설비가 낡아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는데 한계가 있다. 대형 뮤지컬이나 세계적 거장의 무대가 마련될 때마다 표 구하기 전쟁이 반복되는 풍경은 울산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더 큰 무대, 더 깊은 울림에 향하는 시민들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시가 ‘더 홀 1962(The Hall 1962)’를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5000억원대에 달하는 벽을 넘기 위해서는 다층적 해법이 필요하다.
우선 ‘울산국제정원박람회 특별법’ 제정을 통해 공연장을 특별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이를 통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와 국비 지원의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순천시가 정원박람회를 계기로 문화 인프라를 확충했던 전례가 있다.
또 주목할 대목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세계적 규모의 문화·엔터테인먼트 파크’를 약속했고, 그 입지로 태화강역 인근을 지목한 바 있다. 다른 장소를 새로 찾기보다 울산시가 이미 준비해둔 삼산매립지를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기업의 사회공헌(CSR)과 네이밍 권리, 기부 매칭 등 민간 참여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설계해 울산의 주력 기업들이 동행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태화강역 복합환승센터 조성 사업 역시 전체 사업비 가운데 무려 90%인 7470억원을 민간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또한 재원 확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민간사업자 지정부터 실행 단계까지 현실성 있는 수익 모델을 제시하고, 공공성과 수익성의 균형을 치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울산은 지금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산업수도의 위상을 지켜온 저력을 바탕으로, 이제 문화와 정원 도시로 거듭나려 한다. 정부의 결단과 기업의 동행, 시민의 지혜가 모인다면 태화강역은 단순한 역이 아니라 울산의 미래를 여는 관문이 될 것이다.
석현주 사회부 차장 hyunju02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