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기후환경에너지부’ 신설을 공식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 기능을 떼어내 환경부로 이관하고, 기존 환경부를 확대 개편하는 방식이다. 새 부처에는 에너지 전담 제2차관을 두고, 기획재정부 소속이던 기후대응기금과 녹색기후기금까지 일원화해 운용한다.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컨트롤타워를 세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표면적으로는 ‘통합’이 핵심이다. 지금까지 기후정책은 환경부, 에너지정책은 산업부, 예산은 기재부로 흩어져 있었다. 이번 개편으로 정책과 재정이 한 부처에 모이면서 효율적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기후위기를 선언한 나라라면 응당 이런 전담 부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에너지 정책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반도체·AI 데이터센터처럼 전력을 대규모로 쓰는 산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환경 중심 부처가 과연 산업계 요구에 균형 있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규제와 진흥 기능이 같은 부처 안에서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에너지 요금 체계 개편, 전력시장 구조 개혁, 송배전망 투자 등 민감한 의제에서 혼선이 생길 경우, 조직 신설의 의미가 반감될 수 있다.
해외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은 2008년 에너지·기후변화부(DECC)를 세웠지만 전력 수급 불안과 정책 실행력 부족으로 8년 만에 해체했다. 독일 역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부와 기후행동부를 합치거나 쪼개기를 반복하며 정책 연속성이 약화됐다. 프랑스는 ‘생태전환부’에 에너지 정책을 맡겼다가 결국 산업부로 되돌렸다. 통합 부처의 성패는 결국 정치적 의지와 실행력, 그리고 산업과 기후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시험대는 재정 운영이다. 기후대응기금과 녹색기후기금이 기후환경에너지부로 넘어오면서 ‘돈줄’을 쥐게 됐다. 이는 정책과 예산을 일체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다. 그러나 반대로 기후예산이 산업 지원금으로 흡수되거나, 특정 사업에 편중될 가능성도 있다. 재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정책 집행의 현장은 결국 지방정부와 시민사회다. 기후위기 대응은 중앙정부의 선언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 지역 탄소중립센터, 시민햇빛발전소, 에너지협동조합 같은 풀뿌리 모델이 확산되어야 정책이 뿌리내린다.
기후환경에너지부 신설은 분명 한국 기후정책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그러나 단순히 간판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산업 성장과 기후 대응의 균형, 정책과 예산의 투명성, 그리고 시민사회와의 협력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형식적 개편’이 아니라, 실행력 있는 실질적 전환점이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다. 신설 부처가 진정한 컨트롤타워로 자리 잡아,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길 기대한다.
맹소영 기상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