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로 향하는 발길이 거세진 지 오래다. 농촌과 산촌의 골목마다, 바람이 불어도 열리지 않는 대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빈집 증가시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0채 중 1채가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으로 남아 있다. 빈집은 단순히 건물 한 채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한 가족의 이야기, 한 세대의 추억, 한 마을의 공동체 정신이 허물어지는 상징이다. 흙담이 무너지고 기왓장이 떨어져 내리는 풍경은 단순한 노후화의 흔적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다. 빈집은 늘어가고 사람은 줄어들면서, 마을은 더 이상 마을이라 불리기 어렵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단순히 ‘시대적 흐름’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빈집 증가는 사회적 위험 요소이기도 하다. 방치된 집은 범죄의 은신처로 악용될 수 있고, 화재나 붕괴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 더 나아가 공동체 붕괴가 지역 소멸로 이어지면 국가 균형 발전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빈집이 늘어나고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 안전망이 하나둘 해체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빈집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아키야 뱅크’(빈집 은행) 제도를 통해 방치된 주택을 리모델링해 청년 창업 공간이나 귀농·귀촌인 주거지로 연결하고 있다. 우리 역시 빈집을 방치하지 않고, 문화예술 공간이나 지역 커뮤니티센터로 재생하는 시도가 더 확대돼야 한다. 단순히 철거하거나 흉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다.
또한 귀농·귀촌 정책은 단순한 인구 유입 차원을 넘어, 지역 주민들과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를 재건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농촌에서의 삶이 ‘낭만적 체험’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정착’으로 이어지려면, 의료·교육·교통 등 기본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마을을 지키는 주민들에 대한 존중이다.
빈집은 단순히 ‘사라진 집’이 아니라 ‘사라진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이들이 있었고, 추억이 켜켜이 쌓였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단순한 건물의 붕괴가 아니라, 공동체와 기억의 퇴적층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다. 그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주민들의 존재는, 잊히지 않으려는 땅의 목소리이자, 사라지는 마을이 남긴 마지막 호흡이다. 빈집 증가시대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한 통계 수치가 아니다. 그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의 흔적을 품은 마을이다. 불빛이 꺼진 집들을 다시 밝히지 못한다면, 최소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만큼은 꺼뜨리지 않아야 한다. 사라지는 마을의 마지막 주민들이 전하는 침묵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소멸’이 아닌 ‘재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문학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