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공탁은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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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공탁은 잘못이 없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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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준 변호사

평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좀 더 생각해 보면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합의를 하지 못해 손해배상금을 공탁했어도 피해자가 수령 거절의 의사표시를 하면 판결은 보통 ‘공탁했으나 피해자가 수령을 거절하므로 양형에 반영하지 아니한다’고 설시한다. 피해자가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니 양형에 반영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양형기준에 ‘상당한 피해회복(공탁 포함)’이 일반양형인자로 명시돼 있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형사사건에서 합의는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피해에 대한 배상으로 공탁을 하면 합의보다 못하지만 피고인의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 있는 셈이다. 금전적 배상외에 다른 수단이 없는 사건인 경우 더욱 그렇다. 지금은 공탁법 개정으로 피공탁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사건 번호로 공탁할 수 있고(형사특례공탁), 피고인의 공탁금 회수제한 신고가 없어도 형사특례공탁은 자동으로 회수제한이 된다. 피공탁자인 피해자는 공탁물 출급청구권을 갖고, 공탁자인 피고인은 공탁물 회수청구권을 갖는다.

피공탁자의 형사 재판부에 대한 수령 거절의 의사표시에도 불구하고 공탁금의 향방이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공탁을 양형에 반영하지 않는 것이 부당함을 알 수 있다. 공탁자가 공탁금을 회수하려면 피공탁자의 동의 또는 공탁소(법원)에 대한 수령거절의 의사표시가 필요하다. 형사사건에서의 수령 거절 의사표시만으로 안된다. 피해자는 형사사건에서 수령 거절을 했더라도 피고인이 회수하기 전, 즉 피공탁자 자신이 피고인의 회수에 동의해 주기 전에 공탁금을 찾아갈 수도 있다. 출급이나 회수없이 시효(10년)가 지나면 국고에 귀속된다. 회수 동의나 공탁소에 대한 수령 거절의 의사표시는 양측 대화가 가능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최근 치사의 교통사고 사건을 변론하는 필자 소속 법인의 변호사를 옆에서 조력한 일이 있었다. 피고인은 합의를 못해 억대의 돈을 공탁했음에도 공탁사실을 양형에 반영하지 않은 1심 판결로 법정 구속됐다. 피고인은 교통사고는 물론 처벌 전력이 없는 여성이었지만, 신호위반·음주운전 등이 아닌 단순한 전방주시 태만으로 80대 중반의 할머니를 치어 사망케 했다. 가볍지 않은 사건이기는 했다. 공탁을 둘러싼 문제점을 부각해 변론하도록 했는데 그것이 주효했는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어쨌든 피고인은 항소심 판결까지 반년 넘게 수감됐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피고인의 차량 보험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면서도 사죄와 배상에 관한 피고인측의 간청을 뿌리치고 대화에 응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유족인 자녀들이 피고인의 엄벌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친인척들까지 나서서 진정서를 제출하고 재판때마다 법정에 나와 엄벌을 호소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공탁이 하찮게 보였다. 피해자 유족들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어서 이후에도 피공탁자측에서 회수 동의나 공탁소에 수령 거절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피고인은 피공탁자의 회수 동의가 없으면 공탁금을 회수할 수 없는 반면 피해자측의 수령 거절을 이유로 양형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상식에 맞을까. 더구나 피공탁자인 피해자측에서는 형사재판에서 수령 거절을 해 피고인의 중형 선고를 유도한 다음 마음을 바꿔 공탁금을 출급할 수도 있을 터인데 이는 신의칙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1심에서 공탁을 양형에 반영하지 않았다면 항소해 다툴 수 있지만 만약 항소심 판결이 그러하다면 피고인은 더 이상 다툴 수도 없다. 양형 부당은 상고 이유가 안된다.

법의 해석과 적용이 상식에 맞지 않으면 법이 추구하는 합리성과 공정성에 반한다. 법에도 흠결이 있을 수 있다지만 해석과 판단이 상식에 어긋나서 부조리한 결과가 생기면 곤란하다. 양형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자 하는 피고인의 공탁은 잘못이 없다.

박기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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