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동의 말에 잠시 웃음을 지어보인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탕왕과 무왕이 그리했다고 나조차 그리할 수는 없느니라. 주상과 권신들이 내 목을 원한다면 줄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느냐. 그것이 나 김덕령이니라. 혹여 명태조 주원장이 청주한씨 가문의 사노비 출신이라는 것 따위에 희망을 가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한 나라의 옥좌는 천운이 닿아야 주인이 되느니라. 지금의 주상이 무능력하고 민심을 잃었어도 아직 그 자리를 보존하는 것 역시 어찌 보면 하늘의 뜻인지도 모른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네 앞날이나 걱정해라. 옥졸들이 깨어나는 것 같은데, 어서 가거라.”
김덕령 장군은 죽음을 각오한 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장군!”
“너는 너 자신을 믿느냐?”
“소인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제 자신까지도 믿지 않습니다.”
“믿어라. 네가 너를 못 믿는데 누가 너를 믿겠느냐?”
“그리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네 목숨도 그리 길지는 않아 보이는구나. 세종조의 장영실도 있느니라. 부디 행동을 함에 있어 자중하고 또 자중하거라.”
“그리하겠습니다. 장군 같은 분을 이리 보내는 주상이 원망스럽습니다.”
천동은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혹독한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이렇게 초연한 충용장 익호장군 김덕령을 죽기 전에 뵌 것에 대해서 영광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탈옥을 권하지 못하고 큰절을 올린 후에 그곳을 나왔다.
며칠 후에 김덕령 장군은 결국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에서 사망했다. 향년 29세의 꽃다운 나이에 그는 그렇게 정적들과 그를 두려워하는 임금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충용장 익호장군 김덕령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반역지향으로 낙인찍힌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의병장이었고, 또 그를 구명할 호남 유생들의 세력이 약화되어서 조정에 힘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조는 전공이 크고 세력이 있는 장수들은 죄다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홍의장군 곽재우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남명 조식의 문하생인 곽재우를 구명하기 위해서 이산해가 수장으로 있는 북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영남의 유생들이 벌떼처럼 상소를 올렸다. 조선왕조의 근간인 유생들, 그것도 세력이 가장 막강한 영남 유생들이 움직이자 조정에서는 곽재우를 무죄 방면하였다. 이몽학의 난에 연루된 죄로 하옥되었다가 살아난 홍의장군은 그길로 낙향하였다. 남도를 호령하던 의병장 익호장군 김덕령의 죽음에 많은 의병장들이 의병들을 해산하고 숨어버렸고, 의병활동은 현저히 위축되었다.
글 : 지선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