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특보를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호우나 강풍처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특보와 달리, 건조특보는 ‘누적된 위험’의 신호다. 판단 기준은 실효습도다. 최근 며칠간의 상대습도에 가중치를 둬 계산하는 값으로, 낙엽과 나뭇가지에 실제로 남아 있는 수분 상태를 반영한다. 실효습도 35% 이하가 이틀 이상 지속되면 건조주의보, 25% 이하면 건조경보다. 30% 아래로 떨어지면 불은 잘 꺼지지 않는다. 사하라 사막의 습도가 10~20%라는 점을 떠올리면, 우리가 경험하는 20%대 수치가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할 수 있다.
“비가 왔으니 괜찮지 않나”라는 기대도 오해다. 가랑비는 지표만 적실 뿐, 산림 내부의 건조도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최소 20~30㎜ 이상의 비가 넓은 지역에 내려야 실질적 해갈이 가능하다. 미스트를 뿌린다고 악건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이미 수일간 축적된 건조는 한 번의 약한 강수로는 꺼지지 않는다.
강풍은 불길을 세운다. 북쪽 저기압과 남쪽 고기압 사이 등압선이 촘촘해지면 바람은 가속되고, 산에서는 지형 효과로, 해안에서는 마찰 감소로 더 거세진다. 초속 7m의 바람만으로도 산불 확산 속도는 몇 배 빨라진다. 불은 위로 타오르지 않고 눕듯이 번진다. 급경사 지형에서는 화선이 순식간에 길어진다.
문제는 이제 3월과 4월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일사량은 급증하고, 겨울 동안 쌓인 낙엽은 가장 건조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동성 저기압이 잦아지며 기압 경도가 커지고, 강풍 빈도도 높아진다. 전통적으로 봄은 산불의 계절이었지만, 기후변화는 그 강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기온 상승은 증발산을 늘리고, 북극 해빙 감소와 해수면 온도 상승은 대기 순환을 바꾼다. ‘안전한 달’이 사라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산불은 자연재해이면서 동시에 인재(人災)다. 최근 10년간 원인의 30% 이상이 입산자 실수, 20% 이상이 소각, 담뱃불도 적지 않다. 기후가 위험을 증폭시키는 시대에 작은 불씨 하나는 구조적 재난으로 번진다. 그래서 대응의 축도 바뀌어야 한다. 단순 진화 중심이 아니라, 실효습도 기반 위험 예측과 선제적 통제, 상시 대응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없이 산불 위험을 낮출 수 없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건조특보는 예보가 아니다. 이미 시작된 위험의 통보다. 비 한 번 기다리며 안도할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날씨가 아니라 기후의 변화를 통과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불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맹소영 기후칼럼니스트·충남대 ESG센터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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